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03년도부터 시행해 온 ‘유심작품상’을 올해부터 ‘유심상’으로 변경하고, 2024년 제22회 유심상 수상자로 시 부문 신철규 시인, 시조 부문 김보람 시인, 소설 부문 최은미 소설가, 평론 부문 조연정 평론가가 각각 선정하였습니다.
제22회 유심상 시상식 및 수상자 간담회 “문학의 현재와 미래”는 2024년 8월 10일(토)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문인의집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제22회 유심상 심사위원 및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제22회 유심상 심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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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장 • 이숭원(문학평론가, 『유심』 편집위원)
심사위원 • 손택수(시인) • 정수자(시조시인) • 윤대녕(소설가) • 김종욱(문학평론가) |
유심상 기본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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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심상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한국 문학의 현장에서 문학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학인을 널리 표창하기 위해 2003년 제정되었습니다.
- 유심상은 최근 2년간의 저서를 대상으로 문단 경력 10년 내외의 젊은 문학인을 수상자로 선정합니다.
- 유심상은 시, 시조, 소설, 평론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각 부문별로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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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만해로부터 무산으로 이어진 유심의 거대한 뿌리가 복고와 창신의 긴밀한 대화 속에 늘 염두에 두고 있었을 유신의 신록이 마침내 유심상을 만났다. 유심과 유신을 축으로 지난 이태 사이 제출된 신예들의 시집 중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세 권을 검토한 결과 신철규 시인의 『심장보다 높이』가 큰 이견 없이 결정되었다. 신철규의 시는 서정시의 퇴적지층을 이어가면서도 경계선 위의 떨림과 파문 그리고 망설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표제작의 ‘어둠과 빛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빠른 이해의 소비와 사유의 자동화로부터 거리를 둔 시가 언뜻 불투명해 보일 수 있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 나 시의 의미화를 지연시키는 움직임으로부터 우리는 명명 너머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자 하는 의지를 읽었다. 먼지와 빗물과 풍화마저 건축의 일부이듯 신철규 시의 건축은 건축 너머의 비가시적 실재 혹은 천변만화하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자 한다. 유심과 유신 사이에 피워 올린 흐릿한 물기가 이슬점의 상태에 이르러 투명하게 빛나는 것이 이번 시집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소감 신철규
딱 한 번 쟁기로 밭을 갈아본 적이 있습니다. 산꼭대기와 가까운 비탈밭이었는데, 워낙 경사가 심해서 관리기로는 고랑을 만들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근래 밭일을 해본 적이 없는 소를 아버지는 간신히 끌고 와 쟁기를 멍에와 연결했습니다. 소는 거추장스러운 멍에를 벗으려고 코에 김을 뿜으면서 용을 썼습니다. 아버지가 쟁기 날을 밭의 한쪽 끝에 박자 소는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고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쟁기를,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고랑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다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쟁기와 고삐를 넘겨받아서 고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눈에 두고 고삐로 소를 재촉하니, 쟁기 날은 땅에 박히지도 않은 채 소 엉덩이만 엉거주춤 끌려가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눈을 아래로 깔고 쟁기를 잡은 왼손에 힘을 주면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아서 고랑은 갈지자를 그렸고, 고랑을 고르게 만들려고 눈을 들면 쟁기 날은 어느새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쟁기 날은 고른 땅 아래에 숨어 있던 돌과 자갈과 만나 제 손에 생생한 저항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결국 하나의 고랑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쟁기를 아버지께 넘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간 갈아온 시의 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삐뚤빼뚤하고 힘을 주었다가 뺐다가 하면서 울퉁불퉁한 것투성이입니다. 저는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바라봅니다. 눈은 높고 손은 낮습니다 (眼高手卑). 지식이나 관념(눈)에만 집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감각과 말(손)을 망각하게 됩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존재의 눈물을 배제한 지식과 관념은 기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갈아놓은 밭과 다름없고, 수많은 언어의 저항들과 부대끼지 않은 시는 결국 감각의 향연으로만 끝나고 맙니다. 저는 눈을 내리깔고 감각에 각인된 말들을 불러오기 위해 다시 눈을 감습니다. 말의 본질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더 깊은, 더 곧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심』이라는 비옥하고 자애로운 땅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 다. 아직은 가녀린 모종에 지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으면서 정진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이 큰 상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하고 자상한 눈으로 길어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절 올립니다. 큰 뜻 일구고 계시는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

심사평
유심상 시조 부문에 김보람 시인이 선 정됐다. 김보람 시인의 『이를테면 모 르는 사람』은 기존의 시조 문법을 경 쾌하게 넘어서는 새로운 발성과 발화 가 돋보인다. 시인이 구사하는 발랄한 어조는 견고한 정형 구조에 미세한 균 열을 내는 동시에 자신의 시적 영토도 넓히는 방향으로 벋어간다. 톡톡 튀는
김보람의 상상력은 일정한 틀에 머물기 쉬운 형식적 안정감을 흔드는 한편, 현 사회에 누적된 불확실성과 전망 부재의 청춘이 겪는 고투의 면면을 그리 는 데서 빛난다. 때로는 돌연하고 모호한 이미지나 비유도 참신한 진술과 엮 이는 순간 섬세한 의미를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에 담아낸 김보람의 시적 확장 가능성은 돌올한 편이다. 특히 ‘한국 문 학의 가능성’과 ‘젊음’을 앞에 두는 상의 취지에 따라, 형식의 답보를 넘어서 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김보람 특유의 시적 개진에 큰 격려를 보낸다.
수상소감 김보람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의, 첫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굳건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돌아선 등을 내밉니다. 그럴 때마다 상심한 내부를 들여다보며 말을 앓았습니다. 나는 왜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다시 벽에 부딪히고 길을 잃습니다. 여전히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동안 나를 알기 위해 시조를 썼고, 곳곳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가만 내 속으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들을 한데 모아서 시집을 묶었습니다. 이 중구난방의 흔적이 세상의 변방 쪽으로 나를 떠밀면서 내가 찾은 의문들입니다. 그것은 안쪽을 파고 드는 질문이자 어긋남을 위한 하나의 형식이 되었습니다. 고교 시절, 시조가 운명처럼 저에게 왔습니다. 시조의 3장이라는 간결한 형식미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 등단을 하고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된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있습니다. 정형시를 쓰는 일이 갑갑하지 않냐는 물음이었습니다. 형식이라는 틀은 종종 제약과 규칙으로 해석되어 자유의 반대 개념이 됩니다. 그러나 시조를 쓰면서 틀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한계라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가는 캔버스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색채와 형태를 표현하고, 작곡가는 악보라는 틀 안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스포츠 경기도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적용되는 규범은 경기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선수들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며 더욱 흥미진진한 경기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시조의 틀은 말하지 않는 말, 말하지 않은 말을 끝없이 되감기하는 시작의 얼굴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폭우와 태풍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터트린 연꽃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싶습니다. 여전히 나는 나를 모르지만, 이 말이 결코 절망적인 말이 아님을 이제는 잘 압니다. 일찍 피었다고 좋을 것도 아직 피지 못했다고 속상할 것도 없지만, 울고 웃고 춤추면서 다시 한 시절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피고 있는 중입니다. 오래오래 뜻 없는 것들을 보고 싶습니다. 두둑한 마음 보태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 상을 운영하시는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올해 유심상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된 최은미의 장편 『마주』는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2020년 여름부터 겨울까지를 배경으로 작가 특유의 밀도 높은 묘사와 정교한 서사로 구축한 소설이다. 캔들 공예방을 운영하는 사십 대 초반의 ‘나(나리)’를 주인공이자 화자로 삼아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립과 단절, 소외와 불안의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는 코로나 시기 이전부터 삶의 밑바닥에 늪처럼 자리하고 있던 해묵은 갈등을 재난 상황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장편 『마주』 는 그것(들)과 대면하면서 치유의 과정을 탐색하는 이야기를 곡진하게 담고 있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사회적 재난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삶의 생태성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와 거기에 따른 윤리적 질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수상소감 최은미
유심상 수상 연락을 받은 날은 가족들과 남쪽 지방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뒤여서인지 여행길에서 저는 조금 들떠 있었고 한편으론 종종 생각에 잠겼습니다. 첫 소설집이 나왔던 십일 년 전, 어 느 지면에선가 저는 무명無明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계속 되짚게 되었고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 기도 했던, 무명 속에 갇힌 제 인물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게도 되었습니다. 그 여행길에서 일행은 통도사에 들렀습니다. 키가 불전함만 할 때부터 법당 바닥을 걸어가 까치발로 보시를 하던 아이는 이제는 훌쩍 큰 발로 불전함을 향하다 그제야 이상한 듯 앞을 보았습니다. 그러곤 통도사 법당에는 왜 불상 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짧게 설명될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하고, 어쩌면 아주 긴 이야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순간에 저는 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습니다. 이야 기의 시공을 돌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는 분명 설악산 자락이 나올 것이고, 감각에 새겨져 있는 계곡 물소리와 목탁 소리, 그리고 만해스님과 무산스님 의 글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도사 극락교를 보면서 저는 문득 무 산스님의 〈절간 이야기〉의 한 구절을 아이한테 들려주고도 싶었습니다. 저 돌 덩어리를 누가 들어다 놨는지 알아? 스님 절에 한 부목 처사가 있었는데 말이 야, 라고 이어지는 아주 긴 이야기의 한 대목을 말입니다. 첫 마음을 놓지 말고 쓰라고 주신 상으로 여기며 꾸준히 쓰겠습니다. 무명의 조건들을 탐구하며 정진하는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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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장전된 시간』이라는 제목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한국 문학과 정치’라는 부제와 어울리면서 ‘장전’은 생경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몇 년 전에 출간했 던 『여성시학, 1980~1990』을 통해서 젠더적인 정체성이 뚜렷한 해석에 놀 랐던 기억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전된 시간』은 기대와 다르게 차분하고 정갈했다. 서두르지 않으며 한 걸음 씩 나아갔고, 마지막에 도달한 지점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전작과 견준다면, 오히려 소심하다고 말해야 할 지경이 었다. 그런 면에서 조연정은 아주 믿음직한 양날의 칼을 가졌다. 그럼에도 두 가지 일을 함께 도모하는 것은 위태롭고,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유심상이 그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는 외로움을 달래 주기를 바란다.
수상소감 조연정
2005년 겨울 신춘문예에 응모한 글이 당선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의 밤이 생각났습니다. 유심상의 수상 소식을 들은 날, 오래전 그날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잠시나마 순수한 기쁨을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그때의 저도, 지금의 저도 불완전하고 불안한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번 수상이 많이 움츠려 있는 저에게 큰 용기를 주는 선물처럼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기분 이 듭니다. 부족한 글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오랫동안 여러 고민을 함께 나눠준 선·후배 동료 문인들의 그리운 얼굴들도 떠오릅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매번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저를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신, 그리고 지금도 기다려주고 계신 편집자 선생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이십 년 가까이 꽤 많은 글을 쓰느라 늘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새삼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소홀하게 대한 것은 어쩐지 저 자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심신의 건강을 지키며 의미 있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더 열심히 고민하고 성실히 쓰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쓰는 글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평론가가 앞으로는 꼭 되어보겠다고 조용히 다짐해봅니다. 다시 한번 수상의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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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03년도부터 시행해 온 ‘유심작품상’을 올해부터 ‘유심상’으로 변경하고, 2024년 제22회 유심상 수상자로 시 부문 신철규 시인, 시조 부문 김보람 시인, 소설 부문 최은미 소설가, 평론 부문 조연정 평론가가 각각 선정하였습니다.
제22회 유심상 시상식 및 수상자 간담회 “문학의 현재와 미래”는 2024년 8월 10일(토)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문인의집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제22회 유심상 심사위원 및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심사위원장
• 이숭원(문학평론가, 『유심』 편집위원)
심사위원
• 손택수(시인)
• 정수자(시조시인)
• 윤대녕(소설가)
• 김종욱(문학평론가)
심사평
만해로부터 무산으로 이어진 유심의 거대한 뿌리가 복고와 창신의 긴밀한 대화 속에 늘 염두에 두고 있었을 유신의 신록이 마침내 유심상을 만났다. 유심과 유신을 축으로 지난 이태 사이 제출된 신예들의 시집 중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세 권을 검토한 결과 신철규 시인의 『심장보다 높이』가 큰 이견 없이 결정되었다. 신철규의 시는 서정시의 퇴적지층을 이어가면서도 경계선 위의 떨림과 파문 그리고 망설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표제작의 ‘어둠과 빛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빠른 이해의 소비와 사유의 자동화로부터 거리를 둔 시가 언뜻 불투명해 보일 수 있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 나 시의 의미화를 지연시키는 움직임으로부터 우리는 명명 너머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자 하는 의지를 읽었다. 먼지와 빗물과 풍화마저 건축의 일부이듯 신철규 시의 건축은 건축 너머의 비가시적 실재 혹은 천변만화하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자 한다. 유심과 유신 사이에 피워 올린 흐릿한 물기가 이슬점의 상태에 이르러 투명하게 빛나는 것이 이번 시집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딱 한 번 쟁기로 밭을 갈아본 적이 있습니다. 산꼭대기와 가까운 비탈밭이었는데, 워낙 경사가 심해서 관리기로는 고랑을 만들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근래 밭일을 해본 적이 없는 소를 아버지는 간신히 끌고 와 쟁기를 멍에와 연결했습니다. 소는 거추장스러운 멍에를 벗으려고 코에 김을 뿜으면서 용을 썼습니다. 아버지가 쟁기 날을 밭의 한쪽 끝에 박자 소는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고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쟁기를,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고랑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다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쟁기와 고삐를 넘겨받아서 고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눈에 두고 고삐로 소를 재촉하니, 쟁기 날은 땅에 박히지도 않은 채 소 엉덩이만 엉거주춤 끌려가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눈을 아래로 깔고 쟁기를 잡은 왼손에 힘을 주면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아서 고랑은 갈지자를 그렸고, 고랑을 고르게 만들려고 눈을 들면 쟁기 날은 어느새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쟁기 날은 고른 땅 아래에 숨어 있던 돌과 자갈과 만나 제 손에 생생한 저항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결국 하나의 고랑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쟁기를 아버지께 넘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간 갈아온 시의 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삐뚤빼뚤하고 힘을 주었다가 뺐다가 하면서 울퉁불퉁한 것투성이입니다. 저는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바라봅니다. 눈은 높고 손은 낮습니다 (眼高手卑). 지식이나 관념(눈)에만 집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감각과 말(손)을 망각하게 됩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존재의 눈물을 배제한 지식과 관념은 기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갈아놓은 밭과 다름없고, 수많은 언어의 저항들과 부대끼지 않은 시는 결국 감각의 향연으로만 끝나고 맙니다. 저는 눈을 내리깔고 감각에 각인된 말들을 불러오기 위해 다시 눈을 감습니다. 말의 본질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더 깊은, 더 곧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심』이라는 비옥하고 자애로운 땅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 다. 아직은 가녀린 모종에 지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으면서 정진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이 큰 상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하고 자상한 눈으로 길어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절 올립니다. 큰 뜻 일구고 계시는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심사평
유심상 시조 부문에 김보람 시인이 선 정됐다. 김보람 시인의 『이를테면 모 르는 사람』은 기존의 시조 문법을 경 쾌하게 넘어서는 새로운 발성과 발화 가 돋보인다. 시인이 구사하는 발랄한 어조는 견고한 정형 구조에 미세한 균 열을 내는 동시에 자신의 시적 영토도 넓히는 방향으로 벋어간다. 톡톡 튀는
김보람의 상상력은 일정한 틀에 머물기 쉬운 형식적 안정감을 흔드는 한편, 현 사회에 누적된 불확실성과 전망 부재의 청춘이 겪는 고투의 면면을 그리 는 데서 빛난다. 때로는 돌연하고 모호한 이미지나 비유도 참신한 진술과 엮 이는 순간 섬세한 의미를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에 담아낸 김보람의 시적 확장 가능성은 돌올한 편이다. 특히 ‘한국 문 학의 가능성’과 ‘젊음’을 앞에 두는 상의 취지에 따라, 형식의 답보를 넘어서 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김보람 특유의 시적 개진에 큰 격려를 보낸다.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의, 첫
나는 왜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다시 벽에 부딪히고 길을 잃습니다. 여전히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동안 나를 알기 위해 시조를 썼고, 곳곳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가만 내 속으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들을 한데 모아서 시집을 묶었습니다. 이 중구난방의 흔적이 세상의 변방 쪽으로 나를 떠밀면서 내가 찾은 의문들입니다. 그것은 안쪽을 파고 드는 질문이자 어긋남을 위한 하나의 형식이 되었습니다.
고교 시절, 시조가 운명처럼 저에게 왔습니다. 시조의 3장이라는 간결한 형식미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 등단을 하고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된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있습니다. 정형시를 쓰는 일이 갑갑하지 않냐는 물음이었습니다. 형식이라는 틀은 종종 제약과 규칙으로 해석되어 자유의 반대 개념이 됩니다. 그러나 시조를 쓰면서 틀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한계라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가는 캔버스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색채와 형태를 표현하고, 작곡가는 악보라는 틀 안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스포츠 경기도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적용되는 규범은 경기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선수들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며 더욱 흥미진진한 경기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시조의 틀은 말하지 않는 말, 말하지 않은 말을 끝없이 되감기하는 시작의 얼굴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폭우와 태풍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터트린 연꽃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싶습니다. 여전히 나는 나를 모르지만, 이 말이 결코 절망적인 말이 아님을 이제는 잘 압니다. 일찍 피었다고 좋을 것도 아직 피지 못했다고 속상할 것도 없지만, 울고 웃고 춤추면서 다시 한 시절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피고 있는 중입니다. 오래오래 뜻 없는 것들을 보고 싶습니다. 두둑한 마음 보태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 상을 운영하시는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올해 유심상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된 최은미의 장편 『마주』는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2020년 여름부터 겨울까지를 배경으로 작가 특유의 밀도 높은 묘사와 정교한 서사로 구축한 소설이다. 캔들 공예방을 운영하는 사십 대 초반의 ‘나(나리)’를 주인공이자 화자로 삼아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립과 단절, 소외와 불안의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는 코로나 시기 이전부터 삶의 밑바닥에 늪처럼 자리하고 있던 해묵은 갈등을 재난 상황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장편 『마주』 는 그것(들)과 대면하면서 치유의 과정을 탐색하는 이야기를 곡진하게 담고 있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사회적 재난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삶의 생태성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와 거기에 따른 윤리적 질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심상 수상 연락을 받은 날은 가족들과 남쪽 지방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뒤여서인지 여행길에서 저는 조금 들떠 있었고 한편으론 종종 생각에 잠겼습니다. 첫 소설집이 나왔던 십일 년 전, 어 느 지면에선가 저는 무명無明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계속 되짚게 되었고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 기도 했던, 무명 속에 갇힌 제 인물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게도 되었습니다. 그 여행길에서 일행은 통도사에 들렀습니다. 키가 불전함만 할 때부터 법당 바닥을 걸어가 까치발로 보시를 하던 아이는 이제는 훌쩍 큰 발로 불전함을 향하다 그제야 이상한 듯 앞을 보았습니다. 그러곤 통도사 법당에는 왜 불상 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짧게 설명될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하고, 어쩌면 아주 긴 이야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순간에 저는 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습니다. 이야 기의 시공을 돌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는 분명 설악산 자락이 나올 것이고, 감각에 새겨져 있는 계곡 물소리와 목탁 소리, 그리고 만해스님과 무산스님 의 글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도사 극락교를 보면서 저는 문득 무 산스님의 〈절간 이야기〉의 한 구절을 아이한테 들려주고도 싶었습니다. 저 돌 덩어리를 누가 들어다 놨는지 알아? 스님 절에 한 부목 처사가 있었는데 말이 야, 라고 이어지는 아주 긴 이야기의 한 대목을 말입니다.
첫 마음을 놓지 말고 쓰라고 주신 상으로 여기며 꾸준히 쓰겠습니다. 무명의 조건들을 탐구하며 정진하는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심사평
『장전된 시간』이라는 제목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한국 문학과 정치’라는 부제와 어울리면서 ‘장전’은 생경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몇 년 전에 출간했 던 『여성시학, 1980~1990』을 통해서 젠더적인 정체성이 뚜렷한 해석에 놀 랐던 기억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전된 시간』은 기대와 다르게 차분하고 정갈했다. 서두르지 않으며 한 걸음 씩 나아갔고, 마지막에 도달한 지점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전작과 견준다면, 오히려 소심하다고 말해야 할 지경이 었다. 그런 면에서 조연정은 아주 믿음직한 양날의 칼을 가졌다. 그럼에도 두 가지 일을 함께 도모하는 것은 위태롭고,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유심상이 그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는 외로움을 달래 주기를 바란다.
부족한 글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오랫동안 여러 고민을 함께 나눠준 선·후배 동료 문인들의 그리운 얼굴들도 떠오릅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매번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저를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신, 그리고 지금도 기다려주고 계신 편집자 선생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이십 년 가까이 꽤 많은 글을 쓰느라 늘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새삼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소홀하게 대한 것은 어쩐지 저 자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심신의 건강을 지키며 의미 있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더 열심히 고민하고 성실히 쓰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쓰는 글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평론가가 앞으로는 꼭 되어보겠다고 조용히 다짐해봅니다. 다시 한번 수상의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