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25년 제23회 유심상 수상자로 시 부문 박준 시인, 시조 부문 김상규 시인, 소설 부문 강화길 소설가를 각각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평론 부분 수상자가 없습니다.)
제23회 유심상 심사위원 및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제23회 유심상 심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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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장 • 이숭원(문학평론가, 『유심』 편집위원)
심사위원 • 손택수(시인) • 정수자(시조시인) • 윤대녕(소설가) • 김종욱(문학평론가) |
유심상 기본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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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심상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한국 문학의 현장에서 문학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학인을 널리 표창하기 위해 2003년 제정되었습니다.
- 유심상은 최근 2년간의 저서를 대상으로 문단 경력 10년 내외의 젊은 문학인을 수상자로 선정합니다.
- 유심상은 시, 시조, 소설, 평론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각 부문별로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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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와 시조 그리고 소설과 비평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지평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유심상 심사는 장르종을 횡단하는 여행이기도 하면서 서로 다른 종들의 미의식을 공유하며 저마다의 차이를 새롭게 생산하는 특별한 자리이기도 하다. 시 부문의 경우 본심에 오른 두 권의 시집은 재현 충동과 비재현 충동 사이에서 분광하는 독자적 울림을 통해 일상에 가려진 비일상의 영토를 탐색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김이강의 시집『트램을 타고』와 박준의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가 바로 그들이다. 언뜻 전혀 다른 개성처럼 보이기도 하나 잘 짜인 의미의 궤도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시의 원심력을 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상실을 마주하는 곡진한 목소리의 힘과 기존 서정시의 관습적 틀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 어디를 넘실거리는 박준의 시를 각별히 주목하였다. 이번 시집에선 특히 일상적 구어를 통해 사소한 순간들을 밀도 있게 포착하는 후반부의 시편들이 새뜻하게 다가왔는데, 시인의 가능성을 기존의 평가 잣대들로 형성된 권위에 기댐 없이 미래를 향해 투사하는 바가 있다. 언어와 존재와 세계의 그늘을 향해 파문을 일으키는 절제된 언어의 힘이 장황한 수사의 시대를 통과하는 거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심상의 당위를 시인이 지속적으로 실천해주길 바란다.
수상소감 짧은 계절, 큰 빛
마지막으로 백담사를 찾은 것은 몇 해 전 여름입니다. 경내에 들어가는 대신 뜰 앞의 너른 바위에서 한뎃잠이나 자고 싶었습니다. 자신도 염치도 없었던 탓입니다. 아미타부처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저는 무엇을 고해야 했을까요. 어떤 것을 새로 쥐게 해달라 원해야 했을까요. 바라는 것 많아 생긴 원망은 또 어디에 두어야 했을까요. 하지만 함께한 이들에게 예를 지켜야 했던 까닭에 혼 자 이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고 걷는 수행 아닌 수행 같은 시간이 얼마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익숙한 이름을 부르 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들 기념 삼아 기와불사를 한다 했습니다. 사양할 새 도 없이 제 몫의 기왓장이 주어졌습니다. 고심 끝에 저는 어떤 낱말이나 문장 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 하나를 작게 그려두었을 뿐입니다. 그때 제가 그린 얼굴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만난 적 있어 슬픈 얼굴인지, 만나지 못 해 그리운 얼굴인지, 사람의 형상이 맞기나 했던 것인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비시적이거나 반시적인 것으로 실컷 도망쳤습 니다. 그동안 세상을 낮춰 보고 흔히 보았던 데는 시가 한몫했다는 원망 섞인 진단도 내려보았습니다. 그러다 간혹 시 비슷한 것이 나올 때는 애써 이건 시 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흘려버렸습니다. 시라면 더 진실해야 한다고, 시라면 더 온전해야 한다고 강박 가득한 생각만 벌세우듯 두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가 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엇을 쓰면 안 될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 듯했습니다. 쓰 는 일이 쓰지 못하는 일보다 더 괴롭다는 것도 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황 이거나 방랑, 이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큰 빛을 만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공연히 그려본 얼굴처럼 아니 있었다면 더 좋았을 시간입니다. 그 러니 오늘의 큰 빛을 만난 것은 저의 일이 아니라 빛의 일입니다. 바래지 않을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

심사평
예심을 거친 시집들은 정형을 돌파해 가는 새로운 감각과 발성이 두드러졌다. 절제된 자유 속에서 정형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모색이 주를 이뤘는데 더러는 양식성의 수위를 넘나드는 불안도 드러냈다. 그중에서 유심상 수상은 김상규의 『존 그리어 보육원의불량소년들』로 선정됐다.
김상규는 독창적인 접근과 발상으로 정형의 시적 경계를 확장하는 고투가 돋보인다. 시조에서 보기 드문 “불량”한 “소년들” 세계의 형상화는 그 안팎의 결락과 소외에 따르는 사회적 그늘의 문제를 환기한다. 한때 시에 출몰했던 ‘소년’의 이미지 차용과는 다르게 현실에 직입하고 심층을 타전하는 진정성의 힘도 있다. 여전히 존재할 “존 그리어 보육원의 불량소년들”과 엇비슷한 처지의 소년·청년들 앞에 닥치는 현실의 거친 파도에 대한 직시와 형상화도 김상규의 개성적 권역을 이룬다. 또한 “섬의 혈통”에 내장된 고아의식이나 결핍의 가족사를 ‘섬 속의 섬’으로 되밟는 주체의 서사화는 낯선 발굴로 시조의 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제재를 정형 안에 갈아 넣는 듯한 긴장감과 안정감이 조화로이 발현되는 구조 운용이 시조의 성취로 평가됐음을 덧붙인다. 다층적 섭렵과 탐색을 바탕 삼는 김상규식 쓰기에서 정형의 미적 경계를 헤쳐나갈 기미를 엿본다. 즐거운 기대와 더불어 축하를 보낸다.
수상소감
올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윤달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윤시 월생이니 2166년에야 음력 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마 이번 생에선 그날 을 맞이하기 어렵겠지요. 그래서일까요?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공달(空月) 아이’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채워도 채워도 끝내 채 울 수 없어 불쌍한 이란 뜻을 담은 말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등단 구 년 만에 낸 첫 시조집은 저를 진정 ‘공달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것은 다 써버려 더는 쓸 것이 바닥난 시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했던 말을 또 하는 수다쟁이가 될까 두려워 몇 달간 펜을 잡지 못했습니다. 청 탁이 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유심 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상은 당치 않는 이유로 시조 쓰기를 멀리하려 는 저에 대한 채찍질이었으며, 다 비웠으니 이제 채울 일만 남았다는 공손한 응원처럼 다가왔습니다.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지만, 저는 변화하는 시대에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시조란 그런 변치 않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지 나친 자유가 방종과 불통으로 흘러갈 때 시조의 오래된 질서야말로 빛을 발 할 것입니다. 물론 그 빛을 따라가는 모험가는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신 념을 가진 이겠지요.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25년 윤달이 들어서는 날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비 어 있는 달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텅 비었기 에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다는 배포가 생긴 것입니다. 영원히 가득 차지 않을 그릇에 수많은 것을 담아보겠습니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먼지일지라도 좌절 하지 않겠습니다. 한겨울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

심사평
강화길의 장편 『치유의 빛』은 동시대 여성 서사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간의 여성 서사는 대개 가부장제와 성의 차별에서 비롯된 억압을 바탕으로 재생산돼왔으나, 강화길에 이르러 양식상의 갱신과 진화를 동시 에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연전에 발표해 크게 주목을 받았던 단편 「음복」의 세계를 확장시킨 이 작품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보다 근원적인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구조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서른 일곱 살의 화자가 중학교 시절 경험한 성장의 순간들을 서두에 상징적으로 배치하고, 지방 소도시라는 폐쇄적인 공동체 내부에서 오랜 유착 관계를 형성해온 종교 단체와 병원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인 여성 주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스릴러, 서스펜스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그만의 독특한 화법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들춰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토록 몸부림쳤음에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고통. 육체라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울려 나오는 단말마의 외침들. 이윽고 멀리 빠져나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자신의 삶이 비롯된 바로 그 자리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불가항력적 절망. 강화길의 『치유의 빛』은 다채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의 다양한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면서 보편적 공감과 깊은 울림을 얻어내고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미처 눈치챌 수 없었던 것들을 그렇게 작가의 노고를 통해 실체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소감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연남동 어느 거리에 서 있었다. 무덥고 습했지만, 걸을 만했다. 케이크를 먹으러 갈 예정이었다. 카페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전화를 받았다. 무척 기뻤다. 믿기지 않기도 했다. 책이 출간된 지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주문하려던 케이크가 품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다른 케이크를 주문하면서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정말 맛있었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팔 년 전 『치유의 빛』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썼다.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통증에 고통받는 사람.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나는 그 모티브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지금—그때—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순이었다는 걸 안다.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동시에 지금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다고 믿었다니. 그랬으니 당연히 작업은 지지부진했고, 나는 이 소설을 미완성인 상태로 아주 오랫동안 내버려뒀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했다. 그랬다.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치유의 빛』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여전히 계속, 나는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아픔과 고통. 삶과 죽음. 분노와 절박함. 절망과 슬픔. 어느 정도는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지 소설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하면 거리를 둘 수 있을지, 그래서 내가 아니라 지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 역시 어떤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썼다. 그 시작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예상치 못한 수상이었던 만큼 무척 설렜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큰 응원을 받은 것 같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
(재)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25년 제23회 유심상 수상자로 시 부문 박준 시인, 시조 부문 김상규 시인, 소설 부문 강화길 소설가를 각각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는 평론 부분 수상자가 없습니다.)
제23회 유심상 심사위원 및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심사위원장
• 이숭원(문학평론가, 『유심』 편집위원)
심사위원
• 손택수(시인)
• 정수자(시조시인)
• 윤대녕(소설가)
• 김종욱(문학평론가)
심사평
시와 시조 그리고 소설과 비평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지평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유심상 심사는 장르종을 횡단하는 여행이기도 하면서 서로 다른 종들의 미의식을 공유하며 저마다의 차이를 새롭게 생산하는 특별한 자리이기도 하다. 시 부문의 경우 본심에 오른 두 권의 시집은 재현 충동과 비재현 충동 사이에서 분광하는 독자적 울림을 통해 일상에 가려진 비일상의 영토를 탐색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김이강의 시집『트램을 타고』와 박준의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가 바로 그들이다. 언뜻 전혀 다른 개성처럼 보이기도 하나 잘 짜인 의미의 궤도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시의 원심력을 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상실을 마주하는 곡진한 목소리의 힘과 기존 서정시의 관습적 틀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 어디를 넘실거리는 박준의 시를 각별히 주목하였다. 이번 시집에선 특히 일상적 구어를 통해 사소한 순간들을 밀도 있게 포착하는 후반부의 시편들이 새뜻하게 다가왔는데, 시인의 가능성을 기존의 평가 잣대들로 형성된 권위에 기댐 없이 미래를 향해 투사하는 바가 있다. 언어와 존재와 세계의 그늘을 향해 파문을 일으키는 절제된 언어의 힘이 장황한 수사의 시대를 통과하는 거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심상의 당위를 시인이 지속적으로 실천해주길 바란다.
짧은 계절, 큰 빛
마지막으로 백담사를 찾은 것은 몇 해 전 여름입니다. 경내에 들어가는 대신 뜰 앞의 너른 바위에서 한뎃잠이나 자고 싶었습니다. 자신도 염치도 없었던 탓입니다. 아미타부처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저는 무엇을 고해야 했을까요. 어떤 것을 새로 쥐게 해달라 원해야 했을까요. 바라는 것 많아 생긴 원망은 또 어디에 두어야 했을까요. 하지만 함께한 이들에게 예를 지켜야 했던 까닭에 혼 자 이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고 걷는 수행 아닌 수행 같은 시간이 얼마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익숙한 이름을 부르 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들 기념 삼아 기와불사를 한다 했습니다. 사양할 새 도 없이 제 몫의 기왓장이 주어졌습니다. 고심 끝에 저는 어떤 낱말이나 문장 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 하나를 작게 그려두었을 뿐입니다. 그때 제가 그린 얼굴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만난 적 있어 슬픈 얼굴인지, 만나지 못 해 그리운 얼굴인지, 사람의 형상이 맞기나 했던 것인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비시적이거나 반시적인 것으로 실컷 도망쳤습 니다. 그동안 세상을 낮춰 보고 흔히 보았던 데는 시가 한몫했다는 원망 섞인 진단도 내려보았습니다. 그러다 간혹 시 비슷한 것이 나올 때는 애써 이건 시 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흘려버렸습니다. 시라면 더 진실해야 한다고, 시라면 더 온전해야 한다고 강박 가득한 생각만 벌세우듯 두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가 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엇을 쓰면 안 될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 듯했습니다. 쓰 는 일이 쓰지 못하는 일보다 더 괴롭다는 것도 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황 이거나 방랑, 이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큰 빛을 만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공연히 그려본 얼굴처럼 아니 있었다면 더 좋았을 시간입니다. 그 러니 오늘의 큰 빛을 만난 것은 저의 일이 아니라 빛의 일입니다. 바래지 않을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친 시집들은 정형을 돌파해 가는 새로운 감각과 발성이 두드러졌다. 절제된 자유 속에서 정형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모색이 주를 이뤘는데 더러는 양식성의 수위를 넘나드는 불안도 드러냈다. 그중에서 유심상 수상은 김상규의 『존 그리어 보육원의불량소년들』로 선정됐다.
김상규는 독창적인 접근과 발상으로 정형의 시적 경계를 확장하는 고투가 돋보인다. 시조에서 보기 드문 “불량”한 “소년들” 세계의 형상화는 그 안팎의 결락과 소외에 따르는 사회적 그늘의 문제를 환기한다. 한때 시에 출몰했던 ‘소년’의 이미지 차용과는 다르게 현실에 직입하고 심층을 타전하는 진정성의 힘도 있다. 여전히 존재할 “존 그리어 보육원의 불량소년들”과 엇비슷한 처지의 소년·청년들 앞에 닥치는 현실의 거친 파도에 대한 직시와 형상화도 김상규의 개성적 권역을 이룬다. 또한 “섬의 혈통”에 내장된 고아의식이나 결핍의 가족사를 ‘섬 속의 섬’으로 되밟는 주체의 서사화는 낯선 발굴로 시조의 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제재를 정형 안에 갈아 넣는 듯한 긴장감과 안정감이 조화로이 발현되는 구조 운용이 시조의 성취로 평가됐음을 덧붙인다. 다층적 섭렵과 탐색을 바탕 삼는 김상규식 쓰기에서 정형의 미적 경계를 헤쳐나갈 기미를 엿본다. 즐거운 기대와 더불어 축하를 보낸다.
올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윤달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윤시 월생이니 2166년에야 음력 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마 이번 생에선 그날 을 맞이하기 어렵겠지요. 그래서일까요?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공달(空月) 아이’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채워도 채워도 끝내 채 울 수 없어 불쌍한 이란 뜻을 담은 말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등단 구 년 만에 낸 첫 시조집은 저를 진정 ‘공달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것은 다 써버려 더는 쓸 것이 바닥난 시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했던 말을 또 하는 수다쟁이가 될까 두려워 몇 달간 펜을 잡지 못했습니다. 청 탁이 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유심 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상은 당치 않는 이유로 시조 쓰기를 멀리하려 는 저에 대한 채찍질이었으며, 다 비웠으니 이제 채울 일만 남았다는 공손한 응원처럼 다가왔습니다.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지만, 저는 변화하는 시대에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시조란 그런 변치 않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지 나친 자유가 방종과 불통으로 흘러갈 때 시조의 오래된 질서야말로 빛을 발 할 것입니다. 물론 그 빛을 따라가는 모험가는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신 념을 가진 이겠지요.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25년 윤달이 들어서는 날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비 어 있는 달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텅 비었기 에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다는 배포가 생긴 것입니다. 영원히 가득 차지 않을 그릇에 수많은 것을 담아보겠습니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먼지일지라도 좌절 하지 않겠습니다. 한겨울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강화길의 장편 『치유의 빛』은 동시대 여성 서사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간의 여성 서사는 대개 가부장제와 성의 차별에서 비롯된 억압을 바탕으로 재생산돼왔으나, 강화길에 이르러 양식상의 갱신과 진화를 동시 에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연전에 발표해 크게 주목을 받았던 단편 「음복」의 세계를 확장시킨 이 작품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보다 근원적인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구조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서른 일곱 살의 화자가 중학교 시절 경험한 성장의 순간들을 서두에 상징적으로 배치하고, 지방 소도시라는 폐쇄적인 공동체 내부에서 오랜 유착 관계를 형성해온 종교 단체와 병원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인 여성 주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스릴러, 서스펜스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그만의 독특한 화법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들춰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토록 몸부림쳤음에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고통. 육체라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울려 나오는 단말마의 외침들. 이윽고 멀리 빠져나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자신의 삶이 비롯된 바로 그 자리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불가항력적 절망. 강화길의 『치유의 빛』은 다채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의 다양한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면서 보편적 공감과 깊은 울림을 얻어내고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미처 눈치챌 수 없었던 것들을 그렇게 작가의 노고를 통해 실체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수상을 축하한다.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연남동 어느 거리에 서 있었다. 무덥고 습했지만, 걸을 만했다. 케이크를 먹으러 갈 예정이었다. 카페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전화를 받았다. 무척 기뻤다. 믿기지 않기도 했다. 책이 출간된 지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주문하려던 케이크가 품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다른 케이크를 주문하면서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정말 맛있었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팔 년 전 『치유의 빛』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썼다.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통증에 고통받는 사람.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나는 그 모티브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지금—그때—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순이었다는 걸 안다.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동시에 지금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다고 믿었다니. 그랬으니 당연히 작업은 지지부진했고, 나는 이 소설을 미완성인 상태로 아주 오랫동안 내버려뒀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했다. 그랬다.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치유의 빛』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여전히 계속, 나는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아픔과 고통. 삶과 죽음. 분노와 절박함. 절망과 슬픔. 어느 정도는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지 소설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하면 거리를 둘 수 있을지, 그래서 내가 아니라 지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 역시 어떤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썼다. 그 시작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예상치 못한 수상이었던 만큼 무척 설렜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큰 응원을 받은 것 같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