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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봄] 다시 읽는 무산 시 '아지랑이'

202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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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는 길

이숭원


누군가가 고통을 받을 때 업보業報라는 말을 한다. 업보란 자신이 벌인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결과적 현상을 뜻한다. 그러니까 현재 겪는 고통이 과거 행적의 결과라는 뜻이다. 불교의 인과 연기의 논리에 의하면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를 좀 더 깊이 이해하면 고통의 발현이 과거의 업장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는 12연기를 설했는데 그 열두 단계의 각 층 위는 사실 명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처음과 끝은 비교 적 쉽게 알 수 있다. 처음은 무명無明이요, 끝은 노사老死다. 연 기의 마지막 단계로 ‘노사’만 생각하지만 ‘노사’ 다음에 ‘우비 고뇌憂悲苦惱’가 이어짐을 알아야 한다. 즉 ‘무명’의 결과로, 늙 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번민하는 괴로움이 최종적으로 나 타난다는 뜻이다. 이러한 괴로움을 일으키는 최초의 동인動因 이 무명이다. 무명이란 미망에 사로잡혀 세상의 실상을 제대 로 보지 못하는 관성을 뜻한다. 이 미망의 무명을 관장하는 인 간의 그릇된 충동이 탐진치貪瞋癡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무명의 속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원인은 과거의 업장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통의 원인은 무명에 있다.


이 세 가지 그릇된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집착을 끊어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고정된 실 체도 없고 모든 것은 쉬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 다. 이것을 깨달으면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그 이치를 깨 달아 몸과 마음으로 실현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무산 선사는 이 어려운 깨달음의 길을 일러주기 위해 자신을 한껏 낮추어 짐짓 허무주의자의 육성을 택했다.


살다 보면 자기 삶이 나아갈 길도 물러설 길도 없는 낭떠러지에 부딪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하고 탄식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 위기의 순간에 어디라도 매달리고 싶 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붙잡을 것이 없고 세상은 온통 뿌연 안개에 휩싸인 듯하다. 그럴 때 “내 평생 붙잡고 살 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이 안개와 아지랑이의 절벽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는 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 어떤 절대적 힘에 의존하기도 하고, 스스로 바닥을 딛고 오르는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무언가 잘못되었다 는 절실한 깨달음이 있어야 도약이 가능하다. 자기 삶이 무언 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음, 이것이 바로 미망의 인식, 무명의 자 각이다. 이 미망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변화가 온다. 그것이 종교적 전환이든 자신의 의지에 의한 변화이든 상관없이 벼랑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보이지 않는 날개를 펴야 한다. 미망에서의 탈출, 미망으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이라는 점을 알아야 우비고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탐미의 윤리』,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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