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살이의 흠집으로 일구어낸 그늘의 경작, 이정록 편
신철규
이정록의 시는 맛있다. 간도 고루 잘 배어 있고 익힘 또한 고루 퍼져 있어 입에서 버석하게 씹히거나 흐물흐물하지 않고 식감이 좋다. 그 상차림 또한 허투루 된 것이 없고 빼놓을 것이 없다. 그 가 주목하는 것은 빛이 내려앉아 사물을 훤히 밝히는 뒤편 또는 옆자리의 그늘이다. 이 그늘은 단순히 빛과 어둠에 관계된 것만 이 아니라 소리와도 잇닿는다. 남도에서 명창을 판가름하는 기준 은 그늘의 유무이다. 아무리 소리가 높고 고와도 내부를 긁거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소리가 없으면 그것은 하품에 지나지 않 는다. 그늘은 다른 말로 시김새라고 하는데, 그것은 안으로 삭인 또는 삭힌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곱게만 뽑아낸 것이 아니라 어딘 가 부딪쳐서 굴곡이 생기거나 천천히 궁글리고 깊이 침전하면서 고인 진액 같은 것이 시김새이다. 김지하에 따르면, 두 극단인 긍 정과 부정,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해학과 비극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 감각과 인식이 있어야만 그것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형식 적으로 역설과 잇닿는다. 보이는 것 안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 그 둘의 자리바꿈, 다시 말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것을 감싸 안는 차원의 변화가 동반된 것이 그늘이고 시김새라는 것이다.* 이정록의 시에는 이것이 있다.
*김지하,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실천문학사, 1999 참조.

이정록 시인을 만나기 위해 홍성문화관에서 기다렸다. 날이 차 고 하늘은 흐리고 바람이 맵찼다. 겨울의 초입이었다. 오랜만에 뵌 시인은 여전히 서글서글한 웃음기 가득한 얼굴과 단단한 몸집 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는 로마병정 같은, 네모나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각 부위마다 근육이 찰진 사내이다.”* 2018년도인 가 여러 문인들과 함께 여수로 문학 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 데 마침 이정록 시인도 동행했다. 여수·순천 사건의 희생자들의 현장을 둘러보고 난 뒤 숙소에 돌아와 간단한 주연이 베풀어졌 는데, 그는 좌중을 압도할 만큼 재담꾼이었다. 단순히 재담만 늘 어놓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흥겹고 감동적인 일인극을 보여주었다. 풀림과 조임, 상승과 하강, 긴장 과 반전이 오가는 잘 짜인 각본이 있는 듯했다. 멀리서 박장대소 를 하면서 웃다가 울다가 하다 보니 자리가 끝났다.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식당에 나와서 아침을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대접에 가득 찰 만큼의 미역국과 고봉밥을 퍼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그가 보였다. 나는 신기해서 그를 곁눈질했다. 여 름이어서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식탁 아래로 두 개의 기둥처럼 튼실한 장딴지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딴딴하고 탄탄한 남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훈, 「그가 그곳에서 사는 이유」, 이정록, 『정말』, 창비, 2010, 117쪽.
우리는 바로 홍성시장 근처 그의 단골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홍성 읍내에서 그가 머물렀거나 발길이 닿았거나 거쳐간 곳들을 둘러보았다.

왼쪽 신작로 끝에 있는 비닐하우스 뒤편의 집이 시인의 생가이다.
이정록은 1964년 7월 29일(음)에 충남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 292번지에서 부 이경연李庚淵과 모 이의순李義順의 장남으로 출생 한다. 차령산맥 끄트머리에 있는, 그가 나고 자란 동네 이름은 황 새울이다. 국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병풍처럼 낮은 뒷산 이 포근하게 보듬은 자리가 바로 황새울이다. 국도 가까운 곳으 로는 논이 층계를 이루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 루고 있고 마을 뒷산에는 황새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커다란 목련 꽃처럼 앉아 있었다. 그 황새들이 논이나 밭에서 먹이를 잡아먹 다가 쉴 때면 흰 도포 자락을 두른 선비처럼 보였다고 한다. 동네 의 한편에 공동우물인 대동샘이 있었다. 아침이면 앞산인 초롱산 에서 해가 솟아 온 마을에 고루 햇살을 뿌렸다. 초롱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의 산들에 비해 단연 높고 봉우리가 뾰족하여 예부터 문필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제는 우람한 소나무도 황새 도 없고 간간이 왜가리들만 지나가는 적막한 마을이 되었다.
그의 생가는 지금도 그 자리 그대로 있다. 원래 살던 위채는 창 고로 쓰고 아래채를 입식으로 바꿔서 어머니가 기거하고 계신 다. 위채 시렁에 깎아놓은 감이며 마늘 등속이 매달려 있었다. 어 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옛 부엌과 뒤란을 둘러보았다. 이제 불을 때지 않는 아궁이는 솥도 하나 없이 그을음만 남아 있으며 옛 연 탄보일러 호수와 물통이 덩그러니 벽에 매달려 있다. 그의 말대 로 뒤란보다 낮은 주방은 예전에는 물이 들어차서 장마가 질 때 면 어머니께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서 불을 때느라 고생이 많으 셨다 한다. 월사금을 낼 때마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기가 힘들어 몇 날 며칠을 미루다 밭에 있는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할부로 내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수염 기르고 말이나 타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읊는 다소 낭만적인 분이셨다.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으셨지만, 동네 이장을 맡으셨기에 면사무소에서 주관하는 일이나 새마 을운동에 열심히 매달리셨다. 하지만 가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어 집안 경제는 항상 쪼들렸다. 아버지는 피 같은 형제를 셋이 나 잃었다. 어릴 적 술에 취해 있을 때가 많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문드러진 속과 아픔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는 1993년 양력 2월 4일 입춘에 돌아 가셨다. 간경화에 설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수덕사에 있는 허름한 여관에서 요양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와 함께. 벽에 그려진 그림은 조카들이 어릴 때 그린 것이다.
그의 동네는 삼베 농사로 겨울을 났다. 몇 대째 삼을 자아 삼베 를 짜는 전주 이가 집성촌이 황새울이다. 남정네들이 삼을 베고 찌고 해서 말려놓으면 그것을 입으로 쪼개서 실을 뽑아내고 베를 짜는 것은 여인네들의 몫이었다.
남들과 달리, 그는 1969년 6세의 나이로 금당초등학교에 입학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머리가 좋아서 이른 나이에 입학한 것 이 아니라, 동네 애들의 시달림 때문에 부모님께서 입학시킨 것 이다. 2학년 때까지 겨우 한글이나 깨우친 정도였다. 학교 공부 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몸도 상대적으로 반 친구들보다 왜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별명은 ‘애기’였다. 고무신을 잃어버리는 날이 많았고 그런 날이면 누가 훔쳐갔는지 제대로 따지거나 찾아 볼 생각도 못 하고 흙투성이 발로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 는 학교에선 주눅 든 날이 많았지만, 동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못 만드는 것이 없었고 놀이에서도 꾀가 많아 아이들을 주 도했다. 새총과 외발 스케이트와 방패연 만들기가 취미이자 특기 였다. 5학년 때는 삽자루를 박아서 핸들을 만들고 브레이크까지 장착한 세발자전거를 만든다. 친구나 선후배에게 시달릴수록 만 화와 만들기에 더욱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쯤에는 든든한 아군들이 생기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공부 도 조금씩 따라잡게 된다.
그는 1975년 홍동중학교에 입학한다. 스승의 날 글짓기에 선 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닌, 선생님에 관한 뒷담화를 휘갈겨 낸 것이 친구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다. 그는 선생님께 걸리면 혼날까 봐 제출하려 하지 않았지만, 친구 들에게 강탈당한 원고가 오순애 국어 선생님의 손에 들어간다. 퇴학을 당할 거란 예상과 달리 ‘입선’이란 의외의 상을 받으면서 국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돌아가신 삼촌이 남긴 국어사전 을 끼고 살게 된다. 어느 날, 일등을 도맡아 하던 양계장집 아들 정덕진이 놓친 낱말 뜻(능률이란 단어였다)을 맞힘으로써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는다. 국어 시간마다 덕진파와 정록파가 생 겨날 정도로 그의 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국어 실력이 늘자 다른 과목도 성적이 오른다. 졸업할 무렵에는 사립고등학교 미 술 장학생으로 추천을 받게 되지만 아버지의 한마디에 꿈을 접는다. “읍내 ‘동보극장’ 간판쟁이 젊더라.” 아마도 기껏 화가가 되어 봤자 간판쟁이밖에 더 될 것이냐, 라는 핀잔과 함께 아직 그 간판 쟁이가 젊으니 네가 그 자리라도 들어가려면 하세월이겠다, 라는 냉소가 동시에 담긴 말일 것이다. 결국 군말 없이 그는 1978년 홍 성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홍동중학교에서. 방과 후에 남아 있던 학생들과 함께 찍었다.
2학년인 조수진, 김나연 학생
그는 고등학교 시절 상과(직업반)에서 문과로, 다시 이과로 바꾸는 월경을 두 번 거쳐 결국 이과로 졸업한다. 그러나 이런 경력이 문학과 시에 입문하는 계기가 될 줄 그땐 몰랐다. 이과로 넘어 온 날, 문과였다는 이유만으로 때마침 열린 교내 백일장에 학급 대표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전까지 글짓기 숙제를 하면 교과서의 일부나 『새농민』의 몇 대목을 베껴서 제출했기에 한 번도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수업을 안 들어가도 좋으니 ‘무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산문을 써놓고 집에 가라는 담임선생님의 명을 받고 ‘무궁화동산’에 갇힌다. 그는 그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 한다. 1979년 10월 16일. 처음으로 베끼는 글이 아닌 창작을 한 다. 오후 세 시쯤 원고지 10매를 완성하고 하늘에 대고 맹세한다. ‘작가가 되자! 나는 천재구나!’ 한 편의 글을 완성해낸 성취감이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이다.

옛 홍성고등학교 강당. 홍성여고로 바뀌면서 건물은 개축되었으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강당은 카페와 공연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누나는 그보다 세 살 위였지만 그가 두 해나 일찍 입학을 해서 한 학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집안 형편상 둘을 연달아 고등학교에 보내기 힘들다고 판단하신 아버지는 누나에게 여고 입학 을 포기할 것을 권한다. 누나는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결정을 되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중학교 졸업 후 일 년 동안 집안일과 농사 일을 거들다가 읍내에 있는 라디오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는데, 진학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을 달래려는 듯 박봉을 쪼개 『한국여 류수필문학』을 월부로 들여놓는다. 누나는 별책부록으로 딸려온
『한용운의 명시』라는 책을 동생에게 선물한다. 그가 처음으로 읽 은 시집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이 책에 실린 시들을 아련하게 읽 는다. 연애시의 형식을 빌린 이 시집에서 그는 사랑과 관계의 애 달픔과 가슴 시린 정한을 받아들인다. 이 시집의 구문들은 당시 에 그가 쓴 연애편지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다. 홍성은 만해 한 용운의 고향이며 해마다 만해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는 ‘만해 문학의 밤’에 사회를 보기도 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예교 실인 만해학교 교장을 맡아보기도 했다. 그는 홍성에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역사서에 나오는 허균의 스승인 이 달 시인과 성삼문, 최영, 만해, 김좌진, 한원진 등이 배출된 고장 이 바로 홍성이다.
그는 우연찮게 반 대표와 교내 대표로 참석한 백일장에 나가 기 시작하면서 시를 품에 안게 된다. 읍내의 헌책방 ‘한일서점’과 ‘홍성서점’에서 책을 사지는 못하고 서거나 앉아서 책을 읽어나 간다. 습작과 문학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주말이면 농사 일을 거들고 외양간을 치우느라 바빴다. 그는 고입시험에서 미술 장학생으로 뽑힐 만큼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심지어 차표를 위조해서 버스를 탄 적도 있다. 하지만 들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버스 기사님이 눈감아주셨다.
1981년, 공주사범대학 인문계열에 입학해 한문교육과를 졸업 한다. 국악연구회인 ‘금슬악회’에 들어가 거문고를 배우기도 했 지만, 시를 쓰는 것이 주업이었다. 뜻하지 않게 들른(?) 도서관에 서 문예지를 탐독한다. 입학할 무렵에는 노는 것이 너무 좋아 학 과 공부를 소홀히 하기도 했지만 3학년 무렵 한시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학업에도 열을 올린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정희성 시인의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감명 깊게 읽는다. 공주 시내에 있는 ‘세종서림’의 시집 코너에서 창비에서 나온 가 장 얇은 시집을 고른 것이다. 시집을 사느라 돈이 떨어져 걸어서 학교로 돌아가는데 금강에 도착할 무렵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 견하게 된다. 그는 시가, 시집이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다. 고전적인 시적 소재를 낭만적 감상으로 버무려낸 시들 을 습작하던 시인에게 삶과 현실이 깊이 새겨지게 된 것이다. 이 를 계기로 기성 시인들의 선집을 독파해나가면서 비판적인 안목 을 키운다. 문학 모임에 매주 두 편의 시를 써 가지만 매번 혹독한 평이 오가는 치열한 습작기를 거친다. 그는 이 무렵 당구나 바둑 등 모든 잡기雜技를 자신의 삶에서 지워나가면서 오로지 시에 몰 두한다. 졸업할 무렵에는 교내에 문학동아리 ‘한누리’를 만들고 활동한다.
그는 1985년 졸업과 함께 홍천 읍내에 있는 광천중학교로 발령받는다. 육 개월 남짓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한다. 그사이 그는 『삶의 문학』에 시를 응모했다가 낙선한다. 본선에서 그를 누르고 당선한 분이 정화진 시인이다. 삼 년 삼 개월 남짓 군 복무를 하는 중에 뜻이 맞는 후임들과 매주 합평회를 한다. 그중 에는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시인 이태관도 있었다. 매해 신춘 문예에 응모하지만 낙선한다. 1988년 제대 후 복직을 하고 다음 해에 결혼한다. 그사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시인이 된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 「농부일기」가 당선된 것이다.
아내는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첼로를 부전공했고 클래식 기타 동아리 활동도 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녀서 풍금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시골 학교라 음악 선생님이 없어 그녀가 학교 에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마침 인근 중학 교에 부임한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을 지도받아 음대에 진학 하게 된 것이다. 연애 기간이 길었기에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은 결혼했고, 근무하던 학교에서 멀지 않은 사글셋방에다 신혼 살림을 차렸다.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금이 신혼살림을 마련 하는 데 고스란히 들어간다. 그 집은 물이 자주 새서 장롱 뒤편 벽 지가 곰팡이꽃으로 가득한 ‘꽃무늬 벽지’가 되기 일쑤였다. 그의 첫 시집에 실린 시의 대부분이 이 집에서 쓰인다. 박봉인 교사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가계를 보다 못한 아내가 패물을 팔아 할부로 피아노를 사서 ‘겨레 피아노교습소’를 연다. 그간의 형편 은 첫 시집에 실린 「보석달」에 그대로 녹아 있다. “식 올린 지 이 년/ 삼 개월 만에 결혼 패물을 판다/ (중략) / 금 판 돈 떼어 섭섭해 새로 산/ 알반지 하나를 쓰다듬으며 아내는/ 괜히 샀다고 괜히 샀 다고/ 젖은 눈망울을 별빛에 씻는다/ 오래 한 화장이 지워지면서/ 아내가 보석달로 떠오른다”. 한 대의 피아노로 시작한 교습소는 나중에는 열세 대의 피아노가 있는 나름 규모가 큰 피아노학원이 된다. 이 피아노학원은 인근에서 꽤 이름이 알려져 성황을 이루기 도 했지만 IMF 사태를 맞아 학원생이 줄면서 문을 닫는다.

안회당에서. 시인이 들고 있는 것은 《홍성신문》이다.
이 신문은 지역신문 가운데 제일 먼저 창간된 것이다.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지역의 뜻 맞는 문인들과 어 울려 문학 활동을 전개해나가지만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그는 그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 를 받았던 《한겨레신문》의 광고란에 실린 한길사에서 펴내는 문 학 잡지 『한길문학』의 신인상 공모를 보게 된다. 그는 여기에 응 모해 1990년 김응교, 박상률 등의 시인들과 함께 등단한다. 그간써놓은 시들을 타자기로 정서해서 시집 원고 묶음을 한길사에 보 낸다. 차일피일 시집이 나올 때만을 기다리다가 직접 찾아간 출 판사에서 자신의 시집 원고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보고 다 짜고짜 회수해 가져온다. 그는 설움과 분노로 몸이 휘청거렸다 고 한다. 상처를 받고 절치부심한 결과, 199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혈거시대穴居時代」가 당선된다. 그는 당선 통보를 직접 받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집에 있는 아내로부터 당선 소식을 듣게 된다. 서른 살이었고 대추나무가 휠 만큼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그가 세 번의 등단 과정을 거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 해인 1991년 안도현 시인으로부터 시집 출간 제의를 받 는다. 문학동네에서 시선을 꾸리는데 발간 순서를 안도현, 도종 환 다음으로 하고 세 권의 시집이 동시에 나오게 하자는 것이었 다. 늦깎이 신인이기는 했지만 파격적인 대우였고 출판사에서 홍 보에도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야심 차게 낸 첫 시집은 기대했던 것 만큼의 반향은 없었다. 첫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에는 방 과 집과 들과 숲과 산이 있으며, 현실의 세목과 생활의 세부로 빼 곡하다. 온갖 생활인들이 출현하며 헌책방이나 대장간 등 삶의 현장에서 길어올린 이야기가 있다. 「서시」에서 “마을이 가까울수 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라고 한 것처럼, 그의 첫 시집에는 삶의 질곡과 생활의 세목들을 성하지 않은 몸 으로 섬세하게 보듬어 안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시에 입문 해 열심히 읽은 책들은 백석과 이용악의 복사판 시집, 김용택, 고 재종, 곽재구 시인 등 리얼리즘 계열의 시집들이었다. 그는 생래적으로 이야기 시에 끌렸던 것 같다.
첫 시집에서 다섯 번째 시집까지 상재하는 데 십 년이 걸린다. 꽤 빠른 걸음이고 보폭 또한 넓다. 첫 시집에서는 시골 생활이나 자연물이 시적 소재였으나 두 번째 시집인 『제비꽃 여인숙』에서 는 생활의 습속이나 품목과 삶의 교차점을 절묘하게 직조해낸다.
「얼음 도마」는 언 냇물 위에서 돼지를 잡는 풍경이 그려지는데, 얼음 위로 번져가는 돼지의 피와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 는 노을을 교차시킨다. 그의 시편들은 외부적 정경과 삶이 긴밀 히 내속하면서, 간명한 스케치로 물상의 이면을 보여준 뒤 번쩍 삶의 진실로 육박해 들어온다.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 「줄탁啐啄」, 『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1)
이 시는 밤하늘에 뜬 별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어둠 속 의 빛과 교차시킨다. 이 시만 보더라도 한시의 작법이 그의 시를 추동하는 핵임을 알 수 있다. 왕창령王昌齡은 『시격詩格』에서 시의 세 가지 경계 또는 영역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첫째, 상상력 을 운용하여 경물의 형상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형사形似’를 통한 ‘물경物境’, 둘째, 사람의 생각이 상상력과 만나 정감으로 전환되 는 정경情境, 셋째, 생각을 펼치어 마음으로 헤아리는 의경意境. 이 시는 물경, 의경, 정경, 정경과 물경의 통합으로 진행된다. 병아리 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줄탁의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안에서 여린 부리로 껍데기를 두드리면 어미가 단단한 부 리로 조심스럽게 그 길을 열어준다. 여린 두드림과 단단한 쫌이 만나 생명의 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은 어쩌면 우주가 지구로 보내온 토닥거림의 흔적일 수 있다. 별빛의 모양과 알껍데기에 남은 부리질의 흔적을 잇대놓는 유비적 상상력이 이 시의 출발점이다. 별빛이 휘황하지 않은 것은 새끼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어미의 모성적 본능의 발현이라는 사유가 전개된다. 눈물 어린 새끼(나)의 눈에 별빛이 번져 보이는 것은 그것이 나를 깨우 기 위해 먼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병한 편저, 『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 문학과지성사, 1992, 133쪽.
그는 시인을 ‘설렘과 그늘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는 그늘을 잘 다룬다. 그늘은 햇볕이 하듯 작물을 기르는 것이 아 니라 작물의 성장을 늦추는 것이다. 작물을 단단히 익게 하는 것 이 그늘의 역할이다. 그는 이질적인 두 대상이 녹으면서 스며들게 하는 데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는 하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낯선 것을 잇대고 넌지시 그 둘을 붙여놓거나 겹쳐놓는다. 두 개의 결이 하나로 얼버무려지고 녹아들면서 만들어내는 유비와 대비. 내적 응결의 되돌림과 휘감음을 통해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작 업이 뒤따른다. “물끄러미, 오래 젖을 것! 풍경에 나를 덧대고, 내 안에 서려온 그늘이나 설움을 오래 문대며 들여다볼 것!”(165쪽)
*이정록, 『시인의 서랍』, 한겨레출판, 2012, 228쪽. 이하 이 산문집에서 인용 된 것들은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
조금은 건방진 생각이지만, 삼십 대 초반에 시집 두 권 정도 냈 으면 시인으로서 다 이룬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요. 그만큼 했으면 저세상으로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어요. 최소한 그때까지는 내 모든 열과 성을 시에 쏟아보자는 각오 때문이기도 했지요. 근데 삼십 대 중반까지 아무리 시를 쓰고 세상을 활개 치 고 다녀도 제 삶은 여전히 이어지는 거예요. 세 번째 시집 『버드 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부터는 나보다는 독자를 더 많이 생각 했어요. 독자는 연극으로 따지면 유료 관객 같은 거예요. 단순히 시집 한 권에 얼마를 지불하는가, 라는 비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 라, 시간이라는 막대한 자기희생과 집중력이라는 힘든 노력이 없으면 시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시를 읽을 때만큼은 온 영혼 을 시에 쏟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시는 누군가의 에너지를 파먹 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담겨 있지 않 다면 그것은 일종의 죄 또는 범죄가 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발견 과 인식의 깊이, 남다른 비유와 기발한 문장이 없으면 그들의 시 간과 돈과 기대치를 훔치거나 무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시 의 형식이나 장치를 잘 아는 고급 독자뿐만 아니라 시를 연애편 지에 한 구절 끼워 넣거나 SNS에 올릴 멋들어진 문장으로 소비하 는 일반 독자에게도 다가갈 수 있어야 해요. 궁극적으로는 재미 와 감동일 거예요. 시의 재미와 감동은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텐 데요, 새로움에서 재미를 얻는 사람도 있고, 잘 쓴 시에서 재미를 얻는 사람도 있고, 내용이 뭉클해서 감동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 요. 제가 한용운 시를 읽었을 때 정서적 충격과 인식의 확장을 경 험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제 마음에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 게 전달하는 데 써먹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시는 그것을 읽는 사 람에게 쓸모와 효용이 있어야 해요. 단지 형식적인 파격이나 낯 선 언어만 내세우는 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저는 믿어요.
한자는 상형을 기원으로 하지만 실제로 많은 한자들은 의미와 형상을 동시에 품는다. 아니, 둘 이상의 상형이 덧대어 하나의 새 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에게 형상은 의미로 날아오르고 의미 는 형상으로 내려앉는다. 그의 시적 언어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 을 만큼 촘촘하다. 언어의 겹침과 결착. 그는 착상이 떠오르면 정 밀한 관찰력과 응시를 바탕으로 묘사를 직조해나가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두 가지 상황의 절묘한 대응과 교차가 일어나는 우회 또는 에두르기를 통해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 유예와 예열 의 시간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한 편의 시는 수평적인 상태에서 입체적인 상태로 탈바꿈한다. 시에 서 시간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천년을 아우르기도 하며, 공간은 지구 반대편에서 우주 너머를 아우른다. 그는 한 편의 시 속에는 반전反轉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한문 선생답게 반전을 어 원적으로 풀이했는데, 반反은 손으로 더듬거리며 언덕 또는 벽을 만나 되돌아오는 수평적 전환이라면, 전轉은 수레가 돌부리나 장 애물을 만나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과 같은 수직적 전환이다. 한 편의 시 속에 뭉근함과 번득임이 동시에 내장되어 있는 것은 이 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시의 마지막 행 또는 연을 확 낚아채 들어올리는 낚싯바늘 같은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독자의 온몸을 떨리게 하는 것이 어야 한다고 말한다.(259~260쪽) 그 이전의 시적 전개에서 길어 올린 감흥이나 정서를 해소하면서 밋밋하게 끝나지 말고 날카롭게 솟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 「더딘 사랑」, 『의자』(문학과지성사, 2006)
이 시는 사랑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인내해야지 가능하다는 전언을 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마모되는 돌부처의 형상과 매일 모양을 달리하는 달의 속성을 비교하고 중첩하여 드러낸다. 시인은 오랜 세월 풍파에 마모된 돌부처를 시간의 퇴적이 불러 오는 변화의 이미지로 차용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와 반복의 속 성을 가진 달을 그 반대편의 이미지로 차용한다. 이러한 두 이미 지의 중첩은 아주 짧은 시간을 비유하는 ‘눈 깜짝할 사이’라는 관 용구와, 달의 모양 변화와 사람이 한쪽 눈을 찡그리는 ‘윙크’ 사 이의 연결을 발견해내는 시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부처는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뎌낸 인내와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 식되기 쉽다. 하지만 돌부처의 입장에서 자신이 완전히 마모되는 시간은 ‘눈 한 번 깜짝할 정도로’ 아주 짧을 수밖에 없다. 또한 돌 이 풍화되어 모래가 되는 것을 돌부처가 ‘모래무덤’이 되는 것으 로 인식하는 것은 대상의 형질적 요소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에 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 마모를 거치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돌부처에게서 ‘순간’을 읽어내고 달의 ‘순간적인 윙크’에서 ‘한 달’이라는 오랜 시간을 읽어내는 시선의 역전을 보여주는 것만으 로도 이 시는 충분히 독자를 감동시킨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달의 윙크’는 천천히 마모되는 돌부처의 시간과 겹쳐져 무 한한 시간으로 확장된다. ‘더딘 사랑’이라는 시의 제목은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이정록 시인은 술자리에서나 문단 모임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재담꾼이었기에 이문구 소설가 등 여러 선배 소설가들에게 소설 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 았다. “아닙니다, 시 한 편에 단편소설 한 편을 넣겠습니다.” 그의 시의 응축과 절제, 생략은 단편소설 같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기에 깊은 울림과 여운을 준다.
그의 본령은 당연히 시인이지만 동시, 동화, 산문, 이야기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장르라는 건 형 식적 구획이며 장르에는 구심력과 함께 원심력도 작동한다고 생 각한다. 시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재료는 같지만 그 구성이나 형 식을 달리하고 싶은 충동이 솟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 을 넘어 작가로, 작가를 넘어 잡가雜家가 되는 것이 하나의 목표 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파서 그 아래 물줄기들이 하나의 수원지로 모여드는 것을 상상한다.
저는 발상이나 착상 자체가 문장의 형식을 이미 내장하고 있다 고 생각해요. 예전에 시만 쓸 때는 산문이나 동화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시라는 형식 속에 집어넣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를 때 어떤 것은 동시로, 어떤 것은 청소년 시로, 어떤 것은 대화체로 이루어진 시로 구분하는 감각 에 더 집중해요. 심지어 동시도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는 시가 있 고 고학년에 맞는 시가 있어요. 청소년 시도 중학생에게 맞는 시가 있고 고등학생에게 맞는 시가 있어요. 이러한 적절한 분배가 그 이야기의 가치와 힘을 더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양식(style)이 잡혀요. 예전에는 시가 될 만한 이야기만 취사선택 하고 나머지는 다 잡념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하고 버렸는데, 이 제는 버릴 이야기가 없어요. 머릿속에 일종의 장르적인 칸막이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청탁 때문에 시를 쓴 적이 없다. 발표할 만한 시를 써놓지 않으면 청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내보일 만 한 시가 없으면 전전긍긍한다. 한두 편 쓸 만한 놈을 서랍에 쟁여 두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늘 부지런 히 이발소(이야기발전소, 교직에서 물러나면서 마련한 작업실)에 나가 착상 하나라도 붙잡으려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무리 평평해 보이는 운동장이라도 물 한 바가지 뿌려놓으면 물길이 생기고,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도 풀의 뿌리는 미세하게 오아시스 쪽을 향하고 있어요. 저는 마른 땅의 물이 어 디로 향하는지 알고 사막의 풀뿌리가 향하는 곳도 알고 있어요. 시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인은 죽임이 아닌 살림을 향해 가 는 것이에요. 제 시가, 제 글이 닿으려고 하는 데도 그곳이에요. 따라서 조급하게 작업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죽기 전까지 시집 과 동시집 서너 권을 더 쓰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단기적으로 집 중하고 싶은 것은 ‘시내버스 학교’예요. 시내버스 운전기사와 승 객 사이에 오가는 농도 짙은 대화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요. 여기에는 시골이나 소읍의 다층적인 문제들이 들어갈 거예요. 빈민층 의 소외,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 대우, 다문화 가정의 열악한 현실, 농촌 고령화와 공동화 등 우리 현실과 삶의 질곡과 아픔을 버스 기사가 느긋하게 호응하며 넌지시 들어주는 극적 일화를 그리는 책이에요. 몇 편씩 쌓이고 있어서 조만간 결실을 보지 않을까 싶 어요. 또 하나는 시로 쓰는 국어사전인데, 책으로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저 스스로 하는 언어 훈련을 끼적여놓는 것이 지요.
『정말』에서는 자연을 쓰기 또는 자연의 쓰기로 돌아오는데 붓, 글씨, 획을 동반한 비유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2022년에 나온 근 작 시집 『그럴 때가 있다』는 정교하게 짜 넣은 이미지들의 조응, 말의 끊어냄과 풀어냄의 긴장이 돋보이는 시들로 가득하다. 망원 경과 현미경을 오가는 시선이 작동하면서 거시와 미시, 전체와 부분을 뒤집어보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표제작 「그럴 때가 있다」 만 보더라도,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상상력과 보이는 곳에서 보 이지 않는 곳을 보는 눈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명편이다. 이 시 에는 앞편과 뒤편을 동시에 아우르는 포용, 덜컹거림과 떨림 속 에 깃든 마음의 파동이 있다.

둥근 무덤을 하나 가정해봅시다. 둥글고 볼록하게 지표면에서 솟아 있는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지요. 여기에 눈이 내려서 쌓이 고 그 위에 햇살이 내리쬐면 굴곡 면에 직사광선이 닿는 것이기 에 더 많이 녹는 곳이 있고 덜 녹는 곳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햇살이 상대적으로 많이 닿는 곳에 눈이 더 빨리 녹지요. 무덤도 반 은 양달로, 반은 응달로 나뉘는 거예요. 한 올의 햇살에도 양달과 응달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멀거나 다른 것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어요. 이런 관계의 인연因緣과 인드라망을 읽어내면 우 리는 서너 사람 또는 단계를 거치면 앉은자리에서 사막의 낙타에 닿을 수 있고 히말라야에 내리는 눈 한 송이를 손바닥에 받을 수 있어요. 율곡 이이의 「팔세부시八歲賦詩」에는 ‘강함만리풍江含萬里風’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강은 만 리 밖에서 불어온 바람을 품 고 있다는 뜻이에요. 강의 물결과 윤슬을 보고 쓴 것이겠죠. 이것 은 만해의 세계관과 서정주의 「연꽃 만나는 바람같이」와도 통하 는 것이에요. 눈앞의 빛나는 윤슬에서 보이지 않는 먼 바람을 느 끼는 것이 저는 시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을 예전에는 머리로 알 아서 착상을 욱여넣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것을 문장 속에 녹 여내거나 발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서너 살짜리 아이가 참방참방 안전하게 물 놀이를 하는 조그만 욕조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옆 에서 지켜보는 어른들도 안심할 만큼 어떤 위험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평론가가 그 욕조에 뛰어들 때는 바닥이 닿지 않을 만큼 깊어야 한다. 쉽고 간명한 언어 속에 든 생활과 사 상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진함과 낮음과 경쾌함 속 에 서슬 푸른 정신의 높이와 쉽게 가닿을 수 없는 푸르른 넓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끼의 날은 날카로울수록 빛나고 꽃의 선명한 빛깔 속에는 아픈 생명의 비명이 숨어 있다. 동심은 편견 없는 시선이다. 아니, 편견이 자리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진심 이다. 그는 최근 그림이 곁들여진 동화책을 냈다. 미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 이현석의 순정만화 톤의 그림이 따뜻하다.
이정록
1964년 홍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 다. 1989년 《대전일보》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 으로 『동심언어사전』, 『그럴 때가 있다』등과 청소년 시집 『까짓것』, 『아직 오지 않 은 나에게』가 있다. 동시집 『지구의 맛』, 『아홉 살은 힘들다』와 그림책 『나무의 마 음』, 『어디가 아프세요?』, 『의자』등이 있으며, 동화책 『대단한 단추들』, 『아들과 아 버지』, 『노는 물을 바꿔라』 등과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 버스를 탄다』가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 상, 풀꽃문학상, 천상병동심문학상 수상.
신철규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심 장보다 높이』를 냈다. 신동엽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유심상 등 수상.
사람살이의 흠집으로 일구어낸 그늘의 경작, 이정록 편
신철규
이정록의 시는 맛있다. 간도 고루 잘 배어 있고 익힘 또한 고루 퍼져 있어 입에서 버석하게 씹히거나 흐물흐물하지 않고 식감이 좋다. 그 상차림 또한 허투루 된 것이 없고 빼놓을 것이 없다. 그 가 주목하는 것은 빛이 내려앉아 사물을 훤히 밝히는 뒤편 또는 옆자리의 그늘이다. 이 그늘은 단순히 빛과 어둠에 관계된 것만 이 아니라 소리와도 잇닿는다. 남도에서 명창을 판가름하는 기준 은 그늘의 유무이다. 아무리 소리가 높고 고와도 내부를 긁거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소리가 없으면 그것은 하품에 지나지 않 는다. 그늘은 다른 말로 시김새라고 하는데, 그것은 안으로 삭인 또는 삭힌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곱게만 뽑아낸 것이 아니라 어딘 가 부딪쳐서 굴곡이 생기거나 천천히 궁글리고 깊이 침전하면서 고인 진액 같은 것이 시김새이다. 김지하에 따르면, 두 극단인 긍 정과 부정,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해학과 비극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 감각과 인식이 있어야만 그것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형식 적으로 역설과 잇닿는다. 보이는 것 안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 그 둘의 자리바꿈, 다시 말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것을 감싸 안는 차원의 변화가 동반된 것이 그늘이고 시김새라는 것이다.* 이정록의 시에는 이것이 있다.
*김지하,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실천문학사, 1999 참조.
이정록 시인을 만나기 위해 홍성문화관에서 기다렸다. 날이 차 고 하늘은 흐리고 바람이 맵찼다. 겨울의 초입이었다. 오랜만에 뵌 시인은 여전히 서글서글한 웃음기 가득한 얼굴과 단단한 몸집 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는 로마병정 같은, 네모나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각 부위마다 근육이 찰진 사내이다.”* 2018년도인 가 여러 문인들과 함께 여수로 문학 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 데 마침 이정록 시인도 동행했다. 여수·순천 사건의 희생자들의 현장을 둘러보고 난 뒤 숙소에 돌아와 간단한 주연이 베풀어졌 는데, 그는 좌중을 압도할 만큼 재담꾼이었다. 단순히 재담만 늘 어놓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흥겹고 감동적인 일인극을 보여주었다. 풀림과 조임, 상승과 하강, 긴장 과 반전이 오가는 잘 짜인 각본이 있는 듯했다. 멀리서 박장대소 를 하면서 웃다가 울다가 하다 보니 자리가 끝났다.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식당에 나와서 아침을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대접에 가득 찰 만큼의 미역국과 고봉밥을 퍼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그가 보였다. 나는 신기해서 그를 곁눈질했다. 여 름이어서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식탁 아래로 두 개의 기둥처럼 튼실한 장딴지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딴딴하고 탄탄한 남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훈, 「그가 그곳에서 사는 이유」, 이정록, 『정말』, 창비, 2010, 117쪽.
우리는 바로 홍성시장 근처 그의 단골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홍성 읍내에서 그가 머물렀거나 발길이 닿았거나 거쳐간 곳들을 둘러보았다.
왼쪽 신작로 끝에 있는 비닐하우스 뒤편의 집이 시인의 생가이다.
이정록은 1964년 7월 29일(음)에 충남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 292번지에서 부 이경연李庚淵과 모 이의순李義順의 장남으로 출생 한다. 차령산맥 끄트머리에 있는, 그가 나고 자란 동네 이름은 황 새울이다. 국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병풍처럼 낮은 뒷산 이 포근하게 보듬은 자리가 바로 황새울이다. 국도 가까운 곳으 로는 논이 층계를 이루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 루고 있고 마을 뒷산에는 황새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커다란 목련 꽃처럼 앉아 있었다. 그 황새들이 논이나 밭에서 먹이를 잡아먹 다가 쉴 때면 흰 도포 자락을 두른 선비처럼 보였다고 한다. 동네 의 한편에 공동우물인 대동샘이 있었다. 아침이면 앞산인 초롱산 에서 해가 솟아 온 마을에 고루 햇살을 뿌렸다. 초롱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의 산들에 비해 단연 높고 봉우리가 뾰족하여 예부터 문필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제는 우람한 소나무도 황새 도 없고 간간이 왜가리들만 지나가는 적막한 마을이 되었다.
그의 생가는 지금도 그 자리 그대로 있다. 원래 살던 위채는 창 고로 쓰고 아래채를 입식으로 바꿔서 어머니가 기거하고 계신 다. 위채 시렁에 깎아놓은 감이며 마늘 등속이 매달려 있었다. 어 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옛 부엌과 뒤란을 둘러보았다. 이제 불을 때지 않는 아궁이는 솥도 하나 없이 그을음만 남아 있으며 옛 연 탄보일러 호수와 물통이 덩그러니 벽에 매달려 있다. 그의 말대 로 뒤란보다 낮은 주방은 예전에는 물이 들어차서 장마가 질 때 면 어머니께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서 불을 때느라 고생이 많으 셨다 한다. 월사금을 낼 때마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기가 힘들어 몇 날 며칠을 미루다 밭에 있는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할부로 내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수염 기르고 말이나 타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읊는 다소 낭만적인 분이셨다.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으셨지만, 동네 이장을 맡으셨기에 면사무소에서 주관하는 일이나 새마 을운동에 열심히 매달리셨다. 하지만 가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어 집안 경제는 항상 쪼들렸다. 아버지는 피 같은 형제를 셋이 나 잃었다. 어릴 적 술에 취해 있을 때가 많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문드러진 속과 아픔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는 1993년 양력 2월 4일 입춘에 돌아 가셨다. 간경화에 설암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수덕사에 있는 허름한 여관에서 요양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와 함께. 벽에 그려진 그림은 조카들이 어릴 때 그린 것이다.
그의 동네는 삼베 농사로 겨울을 났다. 몇 대째 삼을 자아 삼베 를 짜는 전주 이가 집성촌이 황새울이다. 남정네들이 삼을 베고 찌고 해서 말려놓으면 그것을 입으로 쪼개서 실을 뽑아내고 베를 짜는 것은 여인네들의 몫이었다.
남들과 달리, 그는 1969년 6세의 나이로 금당초등학교에 입학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머리가 좋아서 이른 나이에 입학한 것 이 아니라, 동네 애들의 시달림 때문에 부모님께서 입학시킨 것 이다. 2학년 때까지 겨우 한글이나 깨우친 정도였다. 학교 공부 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몸도 상대적으로 반 친구들보다 왜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별명은 ‘애기’였다. 고무신을 잃어버리는 날이 많았고 그런 날이면 누가 훔쳐갔는지 제대로 따지거나 찾아 볼 생각도 못 하고 흙투성이 발로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 는 학교에선 주눅 든 날이 많았지만, 동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못 만드는 것이 없었고 놀이에서도 꾀가 많아 아이들을 주 도했다. 새총과 외발 스케이트와 방패연 만들기가 취미이자 특기 였다. 5학년 때는 삽자루를 박아서 핸들을 만들고 브레이크까지 장착한 세발자전거를 만든다. 친구나 선후배에게 시달릴수록 만 화와 만들기에 더욱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쯤에는 든든한 아군들이 생기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공부 도 조금씩 따라잡게 된다.
그는 1975년 홍동중학교에 입학한다. 스승의 날 글짓기에 선 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닌, 선생님에 관한 뒷담화를 휘갈겨 낸 것이 친구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다. 그는 선생님께 걸리면 혼날까 봐 제출하려 하지 않았지만, 친구 들에게 강탈당한 원고가 오순애 국어 선생님의 손에 들어간다. 퇴학을 당할 거란 예상과 달리 ‘입선’이란 의외의 상을 받으면서 국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돌아가신 삼촌이 남긴 국어사전 을 끼고 살게 된다. 어느 날, 일등을 도맡아 하던 양계장집 아들 정덕진이 놓친 낱말 뜻(능률이란 단어였다)을 맞힘으로써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는다. 국어 시간마다 덕진파와 정록파가 생 겨날 정도로 그의 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국어 실력이 늘자 다른 과목도 성적이 오른다. 졸업할 무렵에는 사립고등학교 미 술 장학생으로 추천을 받게 되지만 아버지의 한마디에 꿈을 접는다. “읍내 ‘동보극장’ 간판쟁이 젊더라.” 아마도 기껏 화가가 되어 봤자 간판쟁이밖에 더 될 것이냐, 라는 핀잔과 함께 아직 그 간판 쟁이가 젊으니 네가 그 자리라도 들어가려면 하세월이겠다, 라는 냉소가 동시에 담긴 말일 것이다. 결국 군말 없이 그는 1978년 홍 성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홍동중학교에서. 방과 후에 남아 있던 학생들과 함께 찍었다.
2학년인 조수진, 김나연 학생
그는 고등학교 시절 상과(직업반)에서 문과로, 다시 이과로 바꾸는 월경을 두 번 거쳐 결국 이과로 졸업한다. 그러나 이런 경력이 문학과 시에 입문하는 계기가 될 줄 그땐 몰랐다. 이과로 넘어 온 날, 문과였다는 이유만으로 때마침 열린 교내 백일장에 학급 대표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전까지 글짓기 숙제를 하면 교과서의 일부나 『새농민』의 몇 대목을 베껴서 제출했기에 한 번도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수업을 안 들어가도 좋으니 ‘무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산문을 써놓고 집에 가라는 담임선생님의 명을 받고 ‘무궁화동산’에 갇힌다. 그는 그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 한다. 1979년 10월 16일. 처음으로 베끼는 글이 아닌 창작을 한 다. 오후 세 시쯤 원고지 10매를 완성하고 하늘에 대고 맹세한다. ‘작가가 되자! 나는 천재구나!’ 한 편의 글을 완성해낸 성취감이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이다.
옛 홍성고등학교 강당. 홍성여고로 바뀌면서 건물은 개축되었으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강당은 카페와 공연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누나는 그보다 세 살 위였지만 그가 두 해나 일찍 입학을 해서 한 학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집안 형편상 둘을 연달아 고등학교에 보내기 힘들다고 판단하신 아버지는 누나에게 여고 입학 을 포기할 것을 권한다. 누나는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결정을 되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중학교 졸업 후 일 년 동안 집안일과 농사 일을 거들다가 읍내에 있는 라디오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는데, 진학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을 달래려는 듯 박봉을 쪼개 『한국여 류수필문학』을 월부로 들여놓는다. 누나는 별책부록으로 딸려온
『한용운의 명시』라는 책을 동생에게 선물한다. 그가 처음으로 읽 은 시집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이 책에 실린 시들을 아련하게 읽 는다. 연애시의 형식을 빌린 이 시집에서 그는 사랑과 관계의 애 달픔과 가슴 시린 정한을 받아들인다. 이 시집의 구문들은 당시 에 그가 쓴 연애편지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다. 홍성은 만해 한 용운의 고향이며 해마다 만해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는 ‘만해 문학의 밤’에 사회를 보기도 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예교 실인 만해학교 교장을 맡아보기도 했다. 그는 홍성에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역사서에 나오는 허균의 스승인 이 달 시인과 성삼문, 최영, 만해, 김좌진, 한원진 등이 배출된 고장 이 바로 홍성이다.
그는 우연찮게 반 대표와 교내 대표로 참석한 백일장에 나가 기 시작하면서 시를 품에 안게 된다. 읍내의 헌책방 ‘한일서점’과 ‘홍성서점’에서 책을 사지는 못하고 서거나 앉아서 책을 읽어나 간다. 습작과 문학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주말이면 농사 일을 거들고 외양간을 치우느라 바빴다. 그는 고입시험에서 미술 장학생으로 뽑힐 만큼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심지어 차표를 위조해서 버스를 탄 적도 있다. 하지만 들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버스 기사님이 눈감아주셨다.
1981년, 공주사범대학 인문계열에 입학해 한문교육과를 졸업 한다. 국악연구회인 ‘금슬악회’에 들어가 거문고를 배우기도 했 지만, 시를 쓰는 것이 주업이었다. 뜻하지 않게 들른(?) 도서관에 서 문예지를 탐독한다. 입학할 무렵에는 노는 것이 너무 좋아 학 과 공부를 소홀히 하기도 했지만 3학년 무렵 한시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학업에도 열을 올린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정희성 시인의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감명 깊게 읽는다. 공주 시내에 있는 ‘세종서림’의 시집 코너에서 창비에서 나온 가 장 얇은 시집을 고른 것이다. 시집을 사느라 돈이 떨어져 걸어서 학교로 돌아가는데 금강에 도착할 무렵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 견하게 된다. 그는 시가, 시집이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다. 고전적인 시적 소재를 낭만적 감상으로 버무려낸 시들 을 습작하던 시인에게 삶과 현실이 깊이 새겨지게 된 것이다. 이 를 계기로 기성 시인들의 선집을 독파해나가면서 비판적인 안목 을 키운다. 문학 모임에 매주 두 편의 시를 써 가지만 매번 혹독한 평이 오가는 치열한 습작기를 거친다. 그는 이 무렵 당구나 바둑 등 모든 잡기雜技를 자신의 삶에서 지워나가면서 오로지 시에 몰 두한다. 졸업할 무렵에는 교내에 문학동아리 ‘한누리’를 만들고 활동한다.
그는 1985년 졸업과 함께 홍천 읍내에 있는 광천중학교로 발령받는다. 육 개월 남짓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한다. 그사이 그는 『삶의 문학』에 시를 응모했다가 낙선한다. 본선에서 그를 누르고 당선한 분이 정화진 시인이다. 삼 년 삼 개월 남짓 군 복무를 하는 중에 뜻이 맞는 후임들과 매주 합평회를 한다. 그중 에는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시인 이태관도 있었다. 매해 신춘 문예에 응모하지만 낙선한다. 1988년 제대 후 복직을 하고 다음 해에 결혼한다. 그사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시인이 된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 「농부일기」가 당선된 것이다.
아내는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첼로를 부전공했고 클래식 기타 동아리 활동도 했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녀서 풍금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시골 학교라 음악 선생님이 없어 그녀가 학교 에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마침 인근 중학 교에 부임한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을 지도받아 음대에 진학 하게 된 것이다. 연애 기간이 길었기에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은 결혼했고, 근무하던 학교에서 멀지 않은 사글셋방에다 신혼 살림을 차렸다.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금이 신혼살림을 마련 하는 데 고스란히 들어간다. 그 집은 물이 자주 새서 장롱 뒤편 벽 지가 곰팡이꽃으로 가득한 ‘꽃무늬 벽지’가 되기 일쑤였다. 그의 첫 시집에 실린 시의 대부분이 이 집에서 쓰인다. 박봉인 교사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가계를 보다 못한 아내가 패물을 팔아 할부로 피아노를 사서 ‘겨레 피아노교습소’를 연다. 그간의 형편 은 첫 시집에 실린 「보석달」에 그대로 녹아 있다. “식 올린 지 이 년/ 삼 개월 만에 결혼 패물을 판다/ (중략) / 금 판 돈 떼어 섭섭해 새로 산/ 알반지 하나를 쓰다듬으며 아내는/ 괜히 샀다고 괜히 샀 다고/ 젖은 눈망울을 별빛에 씻는다/ 오래 한 화장이 지워지면서/ 아내가 보석달로 떠오른다”. 한 대의 피아노로 시작한 교습소는 나중에는 열세 대의 피아노가 있는 나름 규모가 큰 피아노학원이 된다. 이 피아노학원은 인근에서 꽤 이름이 알려져 성황을 이루기 도 했지만 IMF 사태를 맞아 학원생이 줄면서 문을 닫는다.
안회당에서. 시인이 들고 있는 것은 《홍성신문》이다.
이 신문은 지역신문 가운데 제일 먼저 창간된 것이다.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지역의 뜻 맞는 문인들과 어 울려 문학 활동을 전개해나가지만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그는 그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 를 받았던 《한겨레신문》의 광고란에 실린 한길사에서 펴내는 문 학 잡지 『한길문학』의 신인상 공모를 보게 된다. 그는 여기에 응 모해 1990년 김응교, 박상률 등의 시인들과 함께 등단한다. 그간써놓은 시들을 타자기로 정서해서 시집 원고 묶음을 한길사에 보 낸다. 차일피일 시집이 나올 때만을 기다리다가 직접 찾아간 출 판사에서 자신의 시집 원고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보고 다 짜고짜 회수해 가져온다. 그는 설움과 분노로 몸이 휘청거렸다 고 한다. 상처를 받고 절치부심한 결과, 199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혈거시대穴居時代」가 당선된다. 그는 당선 통보를 직접 받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집에 있는 아내로부터 당선 소식을 듣게 된다. 서른 살이었고 대추나무가 휠 만큼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그가 세 번의 등단 과정을 거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 해인 1991년 안도현 시인으로부터 시집 출간 제의를 받 는다. 문학동네에서 시선을 꾸리는데 발간 순서를 안도현, 도종 환 다음으로 하고 세 권의 시집이 동시에 나오게 하자는 것이었 다. 늦깎이 신인이기는 했지만 파격적인 대우였고 출판사에서 홍 보에도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야심 차게 낸 첫 시집은 기대했던 것 만큼의 반향은 없었다. 첫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에는 방 과 집과 들과 숲과 산이 있으며, 현실의 세목과 생활의 세부로 빼 곡하다. 온갖 생활인들이 출현하며 헌책방이나 대장간 등 삶의 현장에서 길어올린 이야기가 있다. 「서시」에서 “마을이 가까울수 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라고 한 것처럼, 그의 첫 시집에는 삶의 질곡과 생활의 세목들을 성하지 않은 몸 으로 섬세하게 보듬어 안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시에 입문 해 열심히 읽은 책들은 백석과 이용악의 복사판 시집, 김용택, 고 재종, 곽재구 시인 등 리얼리즘 계열의 시집들이었다. 그는 생래적으로 이야기 시에 끌렸던 것 같다.
첫 시집에서 다섯 번째 시집까지 상재하는 데 십 년이 걸린다. 꽤 빠른 걸음이고 보폭 또한 넓다. 첫 시집에서는 시골 생활이나 자연물이 시적 소재였으나 두 번째 시집인 『제비꽃 여인숙』에서 는 생활의 습속이나 품목과 삶의 교차점을 절묘하게 직조해낸다.
「얼음 도마」는 언 냇물 위에서 돼지를 잡는 풍경이 그려지는데, 얼음 위로 번져가는 돼지의 피와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 는 노을을 교차시킨다. 그의 시편들은 외부적 정경과 삶이 긴밀 히 내속하면서, 간명한 스케치로 물상의 이면을 보여준 뒤 번쩍 삶의 진실로 육박해 들어온다.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 「줄탁啐啄」, 『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1)
이 시는 밤하늘에 뜬 별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어둠 속 의 빛과 교차시킨다. 이 시만 보더라도 한시의 작법이 그의 시를 추동하는 핵임을 알 수 있다. 왕창령王昌齡은 『시격詩格』에서 시의 세 가지 경계 또는 영역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첫째, 상상력 을 운용하여 경물의 형상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형사形似’를 통한 ‘물경物境’, 둘째, 사람의 생각이 상상력과 만나 정감으로 전환되 는 정경情境, 셋째, 생각을 펼치어 마음으로 헤아리는 의경意境. 이 시는 물경, 의경, 정경, 정경과 물경의 통합으로 진행된다. 병아리 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줄탁의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안에서 여린 부리로 껍데기를 두드리면 어미가 단단한 부 리로 조심스럽게 그 길을 열어준다. 여린 두드림과 단단한 쫌이 만나 생명의 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은 어쩌면 우주가 지구로 보내온 토닥거림의 흔적일 수 있다. 별빛의 모양과 알껍데기에 남은 부리질의 흔적을 잇대놓는 유비적 상상력이 이 시의 출발점이다. 별빛이 휘황하지 않은 것은 새끼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어미의 모성적 본능의 발현이라는 사유가 전개된다. 눈물 어린 새끼(나)의 눈에 별빛이 번져 보이는 것은 그것이 나를 깨우 기 위해 먼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병한 편저, 『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 문학과지성사, 1992, 133쪽.
그는 시인을 ‘설렘과 그늘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는 그늘을 잘 다룬다. 그늘은 햇볕이 하듯 작물을 기르는 것이 아 니라 작물의 성장을 늦추는 것이다. 작물을 단단히 익게 하는 것 이 그늘의 역할이다. 그는 이질적인 두 대상이 녹으면서 스며들게 하는 데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는 하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낯선 것을 잇대고 넌지시 그 둘을 붙여놓거나 겹쳐놓는다. 두 개의 결이 하나로 얼버무려지고 녹아들면서 만들어내는 유비와 대비. 내적 응결의 되돌림과 휘감음을 통해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작 업이 뒤따른다. “물끄러미, 오래 젖을 것! 풍경에 나를 덧대고, 내 안에 서려온 그늘이나 설움을 오래 문대며 들여다볼 것!”(165쪽)
*이정록, 『시인의 서랍』, 한겨레출판, 2012, 228쪽. 이하 이 산문집에서 인용 된 것들은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
조금은 건방진 생각이지만, 삼십 대 초반에 시집 두 권 정도 냈 으면 시인으로서 다 이룬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요. 그만큼 했으면 저세상으로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어요. 최소한 그때까지는 내 모든 열과 성을 시에 쏟아보자는 각오 때문이기도 했지요. 근데 삼십 대 중반까지 아무리 시를 쓰고 세상을 활개 치 고 다녀도 제 삶은 여전히 이어지는 거예요. 세 번째 시집 『버드 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부터는 나보다는 독자를 더 많이 생각 했어요. 독자는 연극으로 따지면 유료 관객 같은 거예요. 단순히 시집 한 권에 얼마를 지불하는가, 라는 비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 라, 시간이라는 막대한 자기희생과 집중력이라는 힘든 노력이 없으면 시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시를 읽을 때만큼은 온 영혼 을 시에 쏟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시는 누군가의 에너지를 파먹 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담겨 있지 않 다면 그것은 일종의 죄 또는 범죄가 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발견 과 인식의 깊이, 남다른 비유와 기발한 문장이 없으면 그들의 시 간과 돈과 기대치를 훔치거나 무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시 의 형식이나 장치를 잘 아는 고급 독자뿐만 아니라 시를 연애편 지에 한 구절 끼워 넣거나 SNS에 올릴 멋들어진 문장으로 소비하 는 일반 독자에게도 다가갈 수 있어야 해요. 궁극적으로는 재미 와 감동일 거예요. 시의 재미와 감동은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텐 데요, 새로움에서 재미를 얻는 사람도 있고, 잘 쓴 시에서 재미를 얻는 사람도 있고, 내용이 뭉클해서 감동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 요. 제가 한용운 시를 읽었을 때 정서적 충격과 인식의 확장을 경 험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제 마음에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 게 전달하는 데 써먹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시는 그것을 읽는 사 람에게 쓸모와 효용이 있어야 해요. 단지 형식적인 파격이나 낯 선 언어만 내세우는 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저는 믿어요.
한자는 상형을 기원으로 하지만 실제로 많은 한자들은 의미와 형상을 동시에 품는다. 아니, 둘 이상의 상형이 덧대어 하나의 새 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에게 형상은 의미로 날아오르고 의미 는 형상으로 내려앉는다. 그의 시적 언어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 을 만큼 촘촘하다. 언어의 겹침과 결착. 그는 착상이 떠오르면 정 밀한 관찰력과 응시를 바탕으로 묘사를 직조해나가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두 가지 상황의 절묘한 대응과 교차가 일어나는 우회 또는 에두르기를 통해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 유예와 예열 의 시간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한 편의 시는 수평적인 상태에서 입체적인 상태로 탈바꿈한다. 시에 서 시간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천년을 아우르기도 하며, 공간은 지구 반대편에서 우주 너머를 아우른다. 그는 한 편의 시 속에는 반전反轉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한문 선생답게 반전을 어 원적으로 풀이했는데, 반反은 손으로 더듬거리며 언덕 또는 벽을 만나 되돌아오는 수평적 전환이라면, 전轉은 수레가 돌부리나 장 애물을 만나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과 같은 수직적 전환이다. 한 편의 시 속에 뭉근함과 번득임이 동시에 내장되어 있는 것은 이 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시의 마지막 행 또는 연을 확 낚아채 들어올리는 낚싯바늘 같은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독자의 온몸을 떨리게 하는 것이 어야 한다고 말한다.(259~260쪽) 그 이전의 시적 전개에서 길어 올린 감흥이나 정서를 해소하면서 밋밋하게 끝나지 말고 날카롭게 솟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 「더딘 사랑」, 『의자』(문학과지성사, 2006)
이 시는 사랑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인내해야지 가능하다는 전언을 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마모되는 돌부처의 형상과 매일 모양을 달리하는 달의 속성을 비교하고 중첩하여 드러낸다. 시인은 오랜 세월 풍파에 마모된 돌부처를 시간의 퇴적이 불러 오는 변화의 이미지로 차용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와 반복의 속 성을 가진 달을 그 반대편의 이미지로 차용한다. 이러한 두 이미 지의 중첩은 아주 짧은 시간을 비유하는 ‘눈 깜짝할 사이’라는 관 용구와, 달의 모양 변화와 사람이 한쪽 눈을 찡그리는 ‘윙크’ 사 이의 연결을 발견해내는 시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부처는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뎌낸 인내와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 식되기 쉽다. 하지만 돌부처의 입장에서 자신이 완전히 마모되는 시간은 ‘눈 한 번 깜짝할 정도로’ 아주 짧을 수밖에 없다. 또한 돌 이 풍화되어 모래가 되는 것을 돌부처가 ‘모래무덤’이 되는 것으 로 인식하는 것은 대상의 형질적 요소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에 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 마모를 거치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돌부처에게서 ‘순간’을 읽어내고 달의 ‘순간적인 윙크’에서 ‘한 달’이라는 오랜 시간을 읽어내는 시선의 역전을 보여주는 것만으 로도 이 시는 충분히 독자를 감동시킨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달의 윙크’는 천천히 마모되는 돌부처의 시간과 겹쳐져 무 한한 시간으로 확장된다. ‘더딘 사랑’이라는 시의 제목은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이정록 시인은 술자리에서나 문단 모임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재담꾼이었기에 이문구 소설가 등 여러 선배 소설가들에게 소설 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 았다. “아닙니다, 시 한 편에 단편소설 한 편을 넣겠습니다.” 그의 시의 응축과 절제, 생략은 단편소설 같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기에 깊은 울림과 여운을 준다.
그의 본령은 당연히 시인이지만 동시, 동화, 산문, 이야기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장르라는 건 형 식적 구획이며 장르에는 구심력과 함께 원심력도 작동한다고 생 각한다. 시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재료는 같지만 그 구성이나 형 식을 달리하고 싶은 충동이 솟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 을 넘어 작가로, 작가를 넘어 잡가雜家가 되는 것이 하나의 목표 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파서 그 아래 물줄기들이 하나의 수원지로 모여드는 것을 상상한다.
저는 발상이나 착상 자체가 문장의 형식을 이미 내장하고 있다 고 생각해요. 예전에 시만 쓸 때는 산문이나 동화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시라는 형식 속에 집어넣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를 때 어떤 것은 동시로, 어떤 것은 청소년 시로, 어떤 것은 대화체로 이루어진 시로 구분하는 감각 에 더 집중해요. 심지어 동시도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는 시가 있 고 고학년에 맞는 시가 있어요. 청소년 시도 중학생에게 맞는 시가 있고 고등학생에게 맞는 시가 있어요. 이러한 적절한 분배가 그 이야기의 가치와 힘을 더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양식(style)이 잡혀요. 예전에는 시가 될 만한 이야기만 취사선택 하고 나머지는 다 잡념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하고 버렸는데, 이 제는 버릴 이야기가 없어요. 머릿속에 일종의 장르적인 칸막이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청탁 때문에 시를 쓴 적이 없다. 발표할 만한 시를 써놓지 않으면 청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내보일 만 한 시가 없으면 전전긍긍한다. 한두 편 쓸 만한 놈을 서랍에 쟁여 두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늘 부지런 히 이발소(이야기발전소, 교직에서 물러나면서 마련한 작업실)에 나가 착상 하나라도 붙잡으려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무리 평평해 보이는 운동장이라도 물 한 바가지 뿌려놓으면 물길이 생기고,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도 풀의 뿌리는 미세하게 오아시스 쪽을 향하고 있어요. 저는 마른 땅의 물이 어 디로 향하는지 알고 사막의 풀뿌리가 향하는 곳도 알고 있어요. 시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인은 죽임이 아닌 살림을 향해 가 는 것이에요. 제 시가, 제 글이 닿으려고 하는 데도 그곳이에요. 따라서 조급하게 작업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죽기 전까지 시집 과 동시집 서너 권을 더 쓰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단기적으로 집 중하고 싶은 것은 ‘시내버스 학교’예요. 시내버스 운전기사와 승 객 사이에 오가는 농도 짙은 대화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요. 여기에는 시골이나 소읍의 다층적인 문제들이 들어갈 거예요. 빈민층 의 소외,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 대우, 다문화 가정의 열악한 현실, 농촌 고령화와 공동화 등 우리 현실과 삶의 질곡과 아픔을 버스 기사가 느긋하게 호응하며 넌지시 들어주는 극적 일화를 그리는 책이에요. 몇 편씩 쌓이고 있어서 조만간 결실을 보지 않을까 싶 어요. 또 하나는 시로 쓰는 국어사전인데, 책으로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저 스스로 하는 언어 훈련을 끼적여놓는 것이 지요.
『정말』에서는 자연을 쓰기 또는 자연의 쓰기로 돌아오는데 붓, 글씨, 획을 동반한 비유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2022년에 나온 근 작 시집 『그럴 때가 있다』는 정교하게 짜 넣은 이미지들의 조응, 말의 끊어냄과 풀어냄의 긴장이 돋보이는 시들로 가득하다. 망원 경과 현미경을 오가는 시선이 작동하면서 거시와 미시, 전체와 부분을 뒤집어보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표제작 「그럴 때가 있다」 만 보더라도,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상상력과 보이는 곳에서 보 이지 않는 곳을 보는 눈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명편이다. 이 시 에는 앞편과 뒤편을 동시에 아우르는 포용, 덜컹거림과 떨림 속 에 깃든 마음의 파동이 있다.
둥근 무덤을 하나 가정해봅시다. 둥글고 볼록하게 지표면에서 솟아 있는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지요. 여기에 눈이 내려서 쌓이 고 그 위에 햇살이 내리쬐면 굴곡 면에 직사광선이 닿는 것이기 에 더 많이 녹는 곳이 있고 덜 녹는 곳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햇살이 상대적으로 많이 닿는 곳에 눈이 더 빨리 녹지요. 무덤도 반 은 양달로, 반은 응달로 나뉘는 거예요. 한 올의 햇살에도 양달과 응달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멀거나 다른 것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어요. 이런 관계의 인연因緣과 인드라망을 읽어내면 우 리는 서너 사람 또는 단계를 거치면 앉은자리에서 사막의 낙타에 닿을 수 있고 히말라야에 내리는 눈 한 송이를 손바닥에 받을 수 있어요. 율곡 이이의 「팔세부시八歲賦詩」에는 ‘강함만리풍江含萬里風’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강은 만 리 밖에서 불어온 바람을 품 고 있다는 뜻이에요. 강의 물결과 윤슬을 보고 쓴 것이겠죠. 이것 은 만해의 세계관과 서정주의 「연꽃 만나는 바람같이」와도 통하 는 것이에요. 눈앞의 빛나는 윤슬에서 보이지 않는 먼 바람을 느 끼는 것이 저는 시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을 예전에는 머리로 알 아서 착상을 욱여넣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것을 문장 속에 녹 여내거나 발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서너 살짜리 아이가 참방참방 안전하게 물 놀이를 하는 조그만 욕조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옆 에서 지켜보는 어른들도 안심할 만큼 어떤 위험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평론가가 그 욕조에 뛰어들 때는 바닥이 닿지 않을 만큼 깊어야 한다. 쉽고 간명한 언어 속에 든 생활과 사 상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진함과 낮음과 경쾌함 속 에 서슬 푸른 정신의 높이와 쉽게 가닿을 수 없는 푸르른 넓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끼의 날은 날카로울수록 빛나고 꽃의 선명한 빛깔 속에는 아픈 생명의 비명이 숨어 있다. 동심은 편견 없는 시선이다. 아니, 편견이 자리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진심 이다. 그는 최근 그림이 곁들여진 동화책을 냈다. 미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 이현석의 순정만화 톤의 그림이 따뜻하다.
이정록
1964년 홍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 다. 1989년 《대전일보》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 으로 『동심언어사전』, 『그럴 때가 있다』등과 청소년 시집 『까짓것』, 『아직 오지 않 은 나에게』가 있다. 동시집 『지구의 맛』, 『아홉 살은 힘들다』와 그림책 『나무의 마 음』, 『어디가 아프세요?』, 『의자』등이 있으며, 동화책 『대단한 단추들』, 『아들과 아 버지』, 『노는 물을 바꿔라』 등과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 버스를 탄다』가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 상, 풀꽃문학상, 천상병동심문학상 수상.
신철규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심 장보다 높이』를 냈다. 신동엽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유심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