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는 피아노다 - 신수정 편
신달자
서초동 멋진 집의 대문 벨을 누르며 피아니스트의 얼굴보다 피아노가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피아노 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피아니스트의 집을 처음으로 가 보는 거라 무엇보다 피아노가 궁금했다. 책이 없는 시인은 있 을 수 있지만, 피아노가 없는 피아니스트는 불가능한 것이 아 닌가……. 나의 상상은 맞아떨어졌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마자 피아노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어머나 두 개의 피아노가 붙어 마치 부부처럼, 아니 샴쌍둥이처럼…….’ 나는 생각했다. 이 피아노에서 저 피아노로 옮겨 다니는 것일까. 피아노 하나 로는 부족한 것일까.
나는 신수정 선생님의 피아노의 역사를 궁금해하며 안내하 는 식탁에 앉았다. 피아노를 궁금해하는 날 보고 선생님은 말 씀하셨다.
“지하가 피아노 방이에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많은가 봐요”라고 말하며 나는 웃 었다. 신수정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 셨다.
식탁에 앉자마자 먹을 걸 이것저것 꺼내 오셨다. 모든 게 푸짐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시키는 사람 없이 모든 걸 혼자, 집 설명에서 그림 설명, 우리가 마시고 있는 차에 대하여 접시에 놓여 있는 과자에 대하여 설명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집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우선 벽에 쌓아놓은 듯 가득 한 책들도,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도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 을 듯했다. 나는 첫 질문을 던졌다.
“어떤 시를 좋아하시나요?”
“하이네의 「시인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슈만이 하이네의 시에 작곡한 연가곡인데 네 번째 「그대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라는 시입니다. 독일의 국민 시인 하이네의 연작시 「서정적 간 주곡」 중 16개를 뽑아 작곡한 것입니다. 예고 때 제일 친한 친 구가 카드에 그 시를 적어주었는데 그때는 하이네의 시인 줄 도 몰랐어요. 그냥 좋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4학년 때 테너 박 인수 독창회 반주를 할 때 보니 바로 그 시였어요. 음악이 이 토록 아름답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지금도 매년 5월 <시인 의 사랑>을 연주할 때면 그 시가 가슴 저리게 다가옵니다.”

신수정 1942년 충북 청주 출생. 대한민국 1세대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다. 서울예고와 서울대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국립아카데미와 미국 피바디 음악대학에서 수학 했다. 1961년 제1회 동아일보 콩쿠르 수석 입상 이후,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빈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국제 무대에 섰다. 27세 때 인 1969년,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후 경원대 음대, 서울대 음대의 최초 여성 학장을 역임하며 교육자로도 활약했다.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외에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 옥관문화훈장, 2011년 독일 정부 일등십자공로훈 장 등을 수훈한 바 있다. 2009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 위원으로도 위촉됐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194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옥천, 청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천여중 어두운 창고 속의 낡은 피아노가 연을 만들 게 된다. 3학년 때 청주로 전학, 전쟁 때는 대구로 피란 가신 이애내 선생님을 만나 석탄 냄새 나는 기차를 타고 레슨을 받 으러 다니며 본격적인 피아노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 1952년 전쟁 중 제1회 이화경향 음악 콩쿠르에 입상하였고, 만 13세 에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0번 D단조>를 해군 정훈음악 대(현 서울시향)와의 협연으로 데뷔하였으며, 서울예고와 서울 대학 시절 반주, 실내악, 창작곡, 오페라, 독일 가곡 반주 등을 연주한 것이 음악인의 기반이 되었다.
서울대 음대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빈 국립음악예술아카 데미에서 만장일치 우등 졸업 후 귀국, 서울 음대 기악과 최연 소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그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재 직 중 피아노 욕심으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피바 디 음대 대학원을 나왔다. 그사이 동아 음악 콩쿠르에서 1위, 빈 스테파노브 콩쿠르 입상 외에도 독일 상공업협회 장학생으 로 선발되었고, 런던필하모니 및 NHK 교향악단과 협연하였 으며, 독일 정부로부터 ‘일등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만약 피아노를 하지 않았다면?”
“심리학을 하고 싶었어요. 독서를 좋아했거든요. 글을 통해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 리고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 심리의 동행자가 되고 싶기도 했 지요. 사람 마음처럼 거대한 미지의 동산은 없을 것입니다. 그 속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심리학? 마음 트레이닝이 제대로 안 되는 나도 심리학이 궁 금했다. 매력 있는 과목이라고 아주 많이 그 문전을 들락거렸던 기억이 났다. 피아니스트와 심리학도 사실 연이 깊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모차르트’라고 하셨다. 어 느 음악도 그러하겠지만 모차르트를 들으면 사람의 마음이 걸 어가는 느낌이 든단다. 걸어가는 것은 만난다는 뜻이다. 사람 의 심리를 보고 아는 데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필요하다. 아름 답고 순진한 것만 같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 숨어 있는 한없 는 슬픔과 순수함이 어딘가 심리학의 세계로 이끌려고 한 것 이 아닐까.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쳤으니 손끝에서 울리는 예술적 감각 이 온몸으로 번져 그 감각은 정연한 울림으로 정신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그 여섯 살에서 이제 팔순이 훨씬 넘었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선생님의 손끝은 언제나 피아노 건반 위에서 살았다. 아니, 온몸과 정신이 건반 위에서 살았다. 아마도 흰 파도를 보거나 가을 구절초가 가득 핀 들판 위에서도 건반처럼 손이 갔을 것이다.
‘나의 피아노’를 가진 것은 예고 1학년 때였다고 한다. ‘야마하 업라이트’였다. 선생님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먼저 아셨을 것이다. 피아노를 가진 뒷이야기에는 감동과 슬픔이 있다. 어머니는 재주 있 는 큰딸인 신수정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딱 치마 두 벌로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살림을 줄여가며 살았다 는 뜻이다. ‘치마 두 벌’은 속 깊은 상징어가 되는 것이다.
그 상징어 속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딸에 대한 기대가 숨어있다. 어머니는 서울사대 전신인 경성사범을 다니셨는데, 그 때는 일본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한국 아이들에겐 풍금을 가르쳤다. 일본 학생이 1등을 하고 선생님께서는 늘 2등을 해서 속상해하셨다는 이야기도 하신다. 어머니는 유능했고 딸들에 대한 꿈이 있으셨다. 어머니의 그 기품 있는 절약 정신 은 결국 두 딸을 피아니스트와 화가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예 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이셨다. 그림은 여러 번 입선하셨고 글 씨 또한 탁월하셔서 개인전도 여셨다. 교육공무원이셨는데 책을 너무 좋아하셨고 어린 시절 악보도 집에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신 선생님도 책 읽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시집, 소설, 요리책까지. 이효석, 김소월 등 기타 한국문학에서 생텍쥐페리, 헤세, 토마스 만 등 외국 문학 까지 모두 다.

아버지 어머니의 그 예술 감각은 오로지 신수정에게로 흘러 왔을까.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예술의 피는 둘째 딸에게도 어김없이 흘러 유능한 화가 신수희를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강력한 핏줄이 신수희 또한 서울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하게 만든 것이다. 어머나 두 딸이 모두 서울대를 수석 입학 졸업을 했다니 부럽고 놀라운 일이다. 두 딸은 기적의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아름답고 늠름한 꽃으로……. 이런 것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알아보셨다. 우리나라 제1회 ‘장한 어머니상’을 신수정 선생님의 어머니께 드렸던 것이다.
더 질문하면 안 될 것 같다. 너무 시샘 나는 일들이 많다. 그 러나 나는 참는다. 우리나라의 여성이므로. 우리나라의 힘이 므로. 거기다 너무 좋은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받았다. 이애내, 정진우, 신재덕 선생님에게 기반을, 그리고 디힐러, 레온 플라 이셔, 빌헬름 켐프 등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와 공부했다. 오늘 의 신수정은 그렇게 탄탄하게 출발했던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신 선생님은 나상조 신부님께 영세를 받았다. 심리적으로 갈등이 많고 흔들리는 대학교 출발점에서 영세 를 받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여섯 살 때 피아 노와 평생 가자는 혼인계약을 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대학교 1학년 때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선서함으로써 피아노와 더불어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계약으로도 좋았던 것이리라. 본명은 ‘카타리나’다. ‘수정’에서 ‘카타리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영 성’은 예술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음이라, 종교적 흐름은 예술 가에게 내면의 힘을 다스리는 큰 힘이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장학금으로 비엔나 유학을 갈 수 있 었다.
모차르트 홀에서 선생님의 피아노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피 아노에게 나를 완전히 내어주고 내가 쓰이도록 전부 헌납하는 모습, 와르르 쏟아지고 치솟는 리듬에 잊었던 기억까지 모두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은 명쾌함과 진지한 몰입의 고뇌까지를 그 순간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저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하려 들었다.
피아노는 손가락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온 전신의 깨어 있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아니다. 지난 생애의 온갖 기능과 기억이 모두 일어서고 손끝의 감각 그 안으로 그 모든 우주의 역사가 살아나 꿈틀거린다. 무엇보다 독단이 아니라 세계의 예술혼을 터치하는 무궁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피아니 스트의 눈썹이, 눈이, 귀가, 코가, 그 미세한 표정 속으로 음악 의 혼이 넘실거리며 전 우주를 출렁거리게 한다. 감정이라는 것을 모두 불러일으켜 바람 같은, 파도 같은 리듬 속으로 자신 의 안을 둘러보게 하는 것이 음악 아닌가. 연주회를 듣노라면 마치 내가 반주한 것처럼, 마치 내가 노래를 한 것 같은 착각으로 나를 휘몰아가는 것이 음악 아닌가. 바로 신수정 선생님의 연주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매년 모차르트 홀에서는 신수정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얼굴 표정, 몸의 흔들림, 피아노와 피아노가 있는 무 대와 객석의 공간까지 모두 하나의 울림으로 혼합 일체를 이 루는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소리의 파장은 감상하는 사람들 에게 예술의 진지한 영양가를 한 상씩 차려주는 느낌을 준다.
나는 아침에 조성진, 임윤찬의 연주를 듣는다. 해는 떠오르고 어둠은 물러가고 잠자리에서 사람들은 일어서기 시작하는 살아나는 그 시간에 이들의 연주는 살아 있는 행복을 느끼게 한다. 신수정 선생님은 조성진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 점을 중 요하게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다른 분들에게 그 공을 넘긴다. 한 명의 위대한 인물이 나오려면 한 사람의 스승이 아니라 여 러 사람들의 사랑이 가야만 가능하다고 하신다. 바로 신수정 선생님처럼 말이다.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음악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한 음악이라는 것은, 우 리 인간의 감정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 는 거예요. 음악에서 감동은 우리 연주자가 스스로 먼저 느껴 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가장 기초가 되는 손가락에 대해서 단단히 훈련을 해야 하고, 그다음에 정말 아름다운 섬세한 귀로 써 미묘한 톤의 차이를 들을 수 있어야 해요. 페달 연습도 해 야 해요. 4분의 1, 2분의 1, 3분의 1, 그렇지 않으면 떨림 같은 페달. 이런 걸로 자신의 음악을 느끼고 만들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순간 예술이니까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그대로 연 주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홀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때문에 그러한 미묘한 차이를 가려낼 수 있는 섬세한 귀를 길러야 한 다는 게 저의 모토예요.”
“음악은 언어예요. 독일 음악은 독일 언어가 있기 때문에 독 일 음악이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재주가 있고 어떤 사람은 덜 있죠. 어쨌든 그 귓속에 있는 억양 플러스, 그 외국어의 장 단이랄지 프레이징이라든지 모두 관계가 되는 것이므로 언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해요. 잔소리 같죠?”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피아노는 피아노다…… 피아노는 피아노다.”
두 번 연속으로 말했다. 단호하게……. 흔히 ‘내 몸 같아요’ 라든지 ‘나와 분별이 안 돼요’라든지 ‘운명이다’라든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조금은 냉철한 답이다. 맞다. 서로 섞이 면 안 된다. 냉철하게 서로 분리되어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어 야 할 것이다. ‘오래 하다 보니 분별이 안 돼요’라는 친절은 금물일지 모른다. 오래 하니까 하나가 되었다? 아니다. 피아노는 피아노다.

신수정 선생님은 예술원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을 맞이해 회장으로서 너무나 큰 행사를 치러내셨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하루 종일 6개 분과, 즉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무용, 모두 특색이 강한 이 분야들의 심포지엄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그리고 모두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라 어려움도 많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람 없이 그 큰 행사를 너무나 완벽하게 치러내셨다. 열정적으로…….
“제가 보기엔 아직도 파랗게 젊으세요!”
“신 선생은 시력이 안 좋으시군요!”

신달자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
『열애』, 『종이』,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를 펴냈다.
피아노는 피아노다 - 신수정 편
신달자
서초동 멋진 집의 대문 벨을 누르며 피아니스트의 얼굴보다 피아노가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피아노 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피아니스트의 집을 처음으로 가 보는 거라 무엇보다 피아노가 궁금했다. 책이 없는 시인은 있 을 수 있지만, 피아노가 없는 피아니스트는 불가능한 것이 아 닌가……. 나의 상상은 맞아떨어졌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마자 피아노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어머나 두 개의 피아노가 붙어 마치 부부처럼, 아니 샴쌍둥이처럼…….’ 나는 생각했다. 이 피아노에서 저 피아노로 옮겨 다니는 것일까. 피아노 하나 로는 부족한 것일까.
나는 신수정 선생님의 피아노의 역사를 궁금해하며 안내하 는 식탁에 앉았다. 피아노를 궁금해하는 날 보고 선생님은 말 씀하셨다.
“지하가 피아노 방이에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많은가 봐요”라고 말하며 나는 웃 었다. 신수정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 셨다.
식탁에 앉자마자 먹을 걸 이것저것 꺼내 오셨다. 모든 게 푸짐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시키는 사람 없이 모든 걸 혼자, 집 설명에서 그림 설명, 우리가 마시고 있는 차에 대하여 접시에 놓여 있는 과자에 대하여 설명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집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우선 벽에 쌓아놓은 듯 가득 한 책들도,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도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 을 듯했다. 나는 첫 질문을 던졌다.
“어떤 시를 좋아하시나요?”
“하이네의 「시인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슈만이 하이네의 시에 작곡한 연가곡인데 네 번째 「그대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라는 시입니다. 독일의 국민 시인 하이네의 연작시 「서정적 간 주곡」 중 16개를 뽑아 작곡한 것입니다. 예고 때 제일 친한 친 구가 카드에 그 시를 적어주었는데 그때는 하이네의 시인 줄 도 몰랐어요. 그냥 좋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4학년 때 테너 박 인수 독창회 반주를 할 때 보니 바로 그 시였어요. 음악이 이 토록 아름답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지금도 매년 5월 <시인 의 사랑>을 연주할 때면 그 시가 가슴 저리게 다가옵니다.”
신수정 1942년 충북 청주 출생. 대한민국 1세대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다. 서울예고와 서울대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국립아카데미와 미국 피바디 음악대학에서 수학 했다. 1961년 제1회 동아일보 콩쿠르 수석 입상 이후,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빈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국제 무대에 섰다. 27세 때 인 1969년,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후 경원대 음대, 서울대 음대의 최초 여성 학장을 역임하며 교육자로도 활약했다.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외에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 옥관문화훈장, 2011년 독일 정부 일등십자공로훈 장 등을 수훈한 바 있다. 2009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 위원으로도 위촉됐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194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옥천, 청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천여중 어두운 창고 속의 낡은 피아노가 연을 만들 게 된다. 3학년 때 청주로 전학, 전쟁 때는 대구로 피란 가신 이애내 선생님을 만나 석탄 냄새 나는 기차를 타고 레슨을 받 으러 다니며 본격적인 피아노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 1952년 전쟁 중 제1회 이화경향 음악 콩쿠르에 입상하였고, 만 13세 에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0번 D단조>를 해군 정훈음악 대(현 서울시향)와의 협연으로 데뷔하였으며, 서울예고와 서울 대학 시절 반주, 실내악, 창작곡, 오페라, 독일 가곡 반주 등을 연주한 것이 음악인의 기반이 되었다.
서울대 음대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빈 국립음악예술아카 데미에서 만장일치 우등 졸업 후 귀국, 서울 음대 기악과 최연 소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그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재 직 중 피아노 욕심으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피바 디 음대 대학원을 나왔다. 그사이 동아 음악 콩쿠르에서 1위, 빈 스테파노브 콩쿠르 입상 외에도 독일 상공업협회 장학생으 로 선발되었고, 런던필하모니 및 NHK 교향악단과 협연하였 으며, 독일 정부로부터 ‘일등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만약 피아노를 하지 않았다면?”
“심리학을 하고 싶었어요. 독서를 좋아했거든요. 글을 통해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 리고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 심리의 동행자가 되고 싶기도 했 지요. 사람 마음처럼 거대한 미지의 동산은 없을 것입니다. 그 속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심리학? 마음 트레이닝이 제대로 안 되는 나도 심리학이 궁 금했다. 매력 있는 과목이라고 아주 많이 그 문전을 들락거렸던 기억이 났다. 피아니스트와 심리학도 사실 연이 깊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모차르트’라고 하셨다. 어 느 음악도 그러하겠지만 모차르트를 들으면 사람의 마음이 걸 어가는 느낌이 든단다. 걸어가는 것은 만난다는 뜻이다. 사람 의 심리를 보고 아는 데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필요하다. 아름 답고 순진한 것만 같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 숨어 있는 한없 는 슬픔과 순수함이 어딘가 심리학의 세계로 이끌려고 한 것 이 아닐까.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쳤으니 손끝에서 울리는 예술적 감각 이 온몸으로 번져 그 감각은 정연한 울림으로 정신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그 여섯 살에서 이제 팔순이 훨씬 넘었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선생님의 손끝은 언제나 피아노 건반 위에서 살았다. 아니, 온몸과 정신이 건반 위에서 살았다. 아마도 흰 파도를 보거나 가을 구절초가 가득 핀 들판 위에서도 건반처럼 손이 갔을 것이다.
‘나의 피아노’를 가진 것은 예고 1학년 때였다고 한다. ‘야마하 업라이트’였다. 선생님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먼저 아셨을 것이다. 피아노를 가진 뒷이야기에는 감동과 슬픔이 있다. 어머니는 재주 있 는 큰딸인 신수정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딱 치마 두 벌로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살림을 줄여가며 살았다 는 뜻이다. ‘치마 두 벌’은 속 깊은 상징어가 되는 것이다.
그 상징어 속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딸에 대한 기대가 숨어있다. 어머니는 서울사대 전신인 경성사범을 다니셨는데, 그 때는 일본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한국 아이들에겐 풍금을 가르쳤다. 일본 학생이 1등을 하고 선생님께서는 늘 2등을 해서 속상해하셨다는 이야기도 하신다. 어머니는 유능했고 딸들에 대한 꿈이 있으셨다. 어머니의 그 기품 있는 절약 정신 은 결국 두 딸을 피아니스트와 화가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예 술적 감각이 뛰어난 분이셨다. 그림은 여러 번 입선하셨고 글 씨 또한 탁월하셔서 개인전도 여셨다. 교육공무원이셨는데 책을 너무 좋아하셨고 어린 시절 악보도 집에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신 선생님도 책 읽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시집, 소설, 요리책까지. 이효석, 김소월 등 기타 한국문학에서 생텍쥐페리, 헤세, 토마스 만 등 외국 문학 까지 모두 다.
아버지 어머니의 그 예술 감각은 오로지 신수정에게로 흘러 왔을까.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예술의 피는 둘째 딸에게도 어김없이 흘러 유능한 화가 신수희를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강력한 핏줄이 신수희 또한 서울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하게 만든 것이다. 어머나 두 딸이 모두 서울대를 수석 입학 졸업을 했다니 부럽고 놀라운 일이다. 두 딸은 기적의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아름답고 늠름한 꽃으로……. 이런 것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알아보셨다. 우리나라 제1회 ‘장한 어머니상’을 신수정 선생님의 어머니께 드렸던 것이다.
더 질문하면 안 될 것 같다. 너무 시샘 나는 일들이 많다. 그 러나 나는 참는다. 우리나라의 여성이므로. 우리나라의 힘이 므로. 거기다 너무 좋은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받았다. 이애내, 정진우, 신재덕 선생님에게 기반을, 그리고 디힐러, 레온 플라 이셔, 빌헬름 켐프 등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와 공부했다. 오늘 의 신수정은 그렇게 탄탄하게 출발했던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신 선생님은 나상조 신부님께 영세를 받았다. 심리적으로 갈등이 많고 흔들리는 대학교 출발점에서 영세 를 받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여섯 살 때 피아 노와 평생 가자는 혼인계약을 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대학교 1학년 때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선서함으로써 피아노와 더불어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계약으로도 좋았던 것이리라. 본명은 ‘카타리나’다. ‘수정’에서 ‘카타리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영 성’은 예술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음이라, 종교적 흐름은 예술 가에게 내면의 힘을 다스리는 큰 힘이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장학금으로 비엔나 유학을 갈 수 있 었다.
모차르트 홀에서 선생님의 피아노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피 아노에게 나를 완전히 내어주고 내가 쓰이도록 전부 헌납하는 모습, 와르르 쏟아지고 치솟는 리듬에 잊었던 기억까지 모두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은 명쾌함과 진지한 몰입의 고뇌까지를 그 순간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저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하려 들었다.
피아노는 손가락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온 전신의 깨어 있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아니다. 지난 생애의 온갖 기능과 기억이 모두 일어서고 손끝의 감각 그 안으로 그 모든 우주의 역사가 살아나 꿈틀거린다. 무엇보다 독단이 아니라 세계의 예술혼을 터치하는 무궁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피아니 스트의 눈썹이, 눈이, 귀가, 코가, 그 미세한 표정 속으로 음악 의 혼이 넘실거리며 전 우주를 출렁거리게 한다. 감정이라는 것을 모두 불러일으켜 바람 같은, 파도 같은 리듬 속으로 자신 의 안을 둘러보게 하는 것이 음악 아닌가. 연주회를 듣노라면 마치 내가 반주한 것처럼, 마치 내가 노래를 한 것 같은 착각으로 나를 휘몰아가는 것이 음악 아닌가. 바로 신수정 선생님의 연주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매년 모차르트 홀에서는 신수정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얼굴 표정, 몸의 흔들림, 피아노와 피아노가 있는 무 대와 객석의 공간까지 모두 하나의 울림으로 혼합 일체를 이 루는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소리의 파장은 감상하는 사람들 에게 예술의 진지한 영양가를 한 상씩 차려주는 느낌을 준다.
나는 아침에 조성진, 임윤찬의 연주를 듣는다. 해는 떠오르고 어둠은 물러가고 잠자리에서 사람들은 일어서기 시작하는 살아나는 그 시간에 이들의 연주는 살아 있는 행복을 느끼게 한다. 신수정 선생님은 조성진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 점을 중 요하게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다른 분들에게 그 공을 넘긴다. 한 명의 위대한 인물이 나오려면 한 사람의 스승이 아니라 여 러 사람들의 사랑이 가야만 가능하다고 하신다. 바로 신수정 선생님처럼 말이다.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음악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한 음악이라는 것은, 우 리 인간의 감정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 는 거예요. 음악에서 감동은 우리 연주자가 스스로 먼저 느껴 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가장 기초가 되는 손가락에 대해서 단단히 훈련을 해야 하고, 그다음에 정말 아름다운 섬세한 귀로 써 미묘한 톤의 차이를 들을 수 있어야 해요. 페달 연습도 해 야 해요. 4분의 1, 2분의 1, 3분의 1, 그렇지 않으면 떨림 같은 페달. 이런 걸로 자신의 음악을 느끼고 만들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순간 예술이니까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그대로 연 주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홀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때문에 그러한 미묘한 차이를 가려낼 수 있는 섬세한 귀를 길러야 한 다는 게 저의 모토예요.”
“음악은 언어예요. 독일 음악은 독일 언어가 있기 때문에 독 일 음악이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재주가 있고 어떤 사람은 덜 있죠. 어쨌든 그 귓속에 있는 억양 플러스, 그 외국어의 장 단이랄지 프레이징이라든지 모두 관계가 되는 것이므로 언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해요. 잔소리 같죠?”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피아노는 피아노다…… 피아노는 피아노다.”
두 번 연속으로 말했다. 단호하게……. 흔히 ‘내 몸 같아요’ 라든지 ‘나와 분별이 안 돼요’라든지 ‘운명이다’라든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조금은 냉철한 답이다. 맞다. 서로 섞이 면 안 된다. 냉철하게 서로 분리되어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어 야 할 것이다. ‘오래 하다 보니 분별이 안 돼요’라는 친절은 금물일지 모른다. 오래 하니까 하나가 되었다? 아니다. 피아노는 피아노다.
신수정 선생님은 예술원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을 맞이해 회장으로서 너무나 큰 행사를 치러내셨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하루 종일 6개 분과, 즉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무용, 모두 특색이 강한 이 분야들의 심포지엄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그리고 모두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라 어려움도 많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람 없이 그 큰 행사를 너무나 완벽하게 치러내셨다. 열정적으로…….
“제가 보기엔 아직도 파랗게 젊으세요!”
“신 선생은 시력이 안 좋으시군요!”
신달자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
『열애』, 『종이』,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