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沈黙』이 발간된 지 백 년이 되었다. 한용운은 청년 계몽 잡지 『유심』지를 창간 주재하다가, 1919년 3・1운동의 독립선언 준비 과정에서 최린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삼 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하여 그의 독립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1922년 출옥한 뒤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하다가 백담사에서 은거하면서 시 창작에 집중하였고 이듬해인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했다. 그는 1918년 『유심』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일이 있으나 그 문학사적 위치는 이 시집 한 권으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 시의 형성 과정에서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문단 권외에 있었고, 동인지의 구성원이 되지 않았으며, 외래 문예사조에 편향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당시 문단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문학적 깊이와 폭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는 당대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의 하나가 시 창작이라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한용운은 시의 창작 과정에서 일상적인 생활에 뿌리박고 있는 고유한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는 대화체의 서정적 발화 방식을 찾아낸다. 그것은 자체 내에서 개별적이지만 아주 특이한 대화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 서정적 발화 방식은 그 시적 의미의 단조로움이나 시 정신의 소박함을 넘어서서 일상적인 생활 감정까지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정서의 공감 영역을 더욱 확대시켜놓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기 이전에 발표한 한용운의 논설이 대부분 한문투에서 벗어 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 시적 성과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6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되었다. 초판본의 판형은 4·6판이며 168면의 양장본으로 모두 8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재판이 나왔다. 이 시집에는 책머리에 한용운 자신의 시적 지향을 암시하는 「군말」이 서문 형식으로 붙어 있고 말미에는 「독자에게」라는 글이 후기처럼 실렸다. 이 두 글은 한용운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시적 주제와 시 창작의 동기를 암시해주고 있다. 「군말」에서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님’이라는 특이한 존재를 ‘기룬 것은 모두 님’이라고 규정했으며, 독자의 후손에게는 이 책을 읽히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 글을 다시 음미하면서 『님의 침묵』 발간 백 년의 의미를 독 자와 함께 기리고자 한다.
— 편집자 해설(권영민)
군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저자著者

독자에게
독자讀者여 나는 시인詩人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子孫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菊花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雪嶽山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을축 팔월 이십구 일 밤 끝)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沈黙』이 발간된 지 백 년이 되었다. 한용운은 청년 계몽 잡지 『유심』지를 창간 주재하다가, 1919년 3・1운동의 독립선언 준비 과정에서 최린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삼 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하여 그의 독립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1922년 출옥한 뒤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하다가 백담사에서 은거하면서 시 창작에 집중하였고 이듬해인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했다. 그는 1918년 『유심』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일이 있으나 그 문학사적 위치는 이 시집 한 권으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 시의 형성 과정에서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문단 권외에 있었고, 동인지의 구성원이 되지 않았으며, 외래 문예사조에 편향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당시 문단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문학적 깊이와 폭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는 당대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의 하나가 시 창작이라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한용운은 시의 창작 과정에서 일상적인 생활에 뿌리박고 있는 고유한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는 대화체의 서정적 발화 방식을 찾아낸다. 그것은 자체 내에서 개별적이지만 아주 특이한 대화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 서정적 발화 방식은 그 시적 의미의 단조로움이나 시 정신의 소박함을 넘어서서 일상적인 생활 감정까지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정서의 공감 영역을 더욱 확대시켜놓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기 이전에 발표한 한용운의 논설이 대부분 한문투에서 벗어 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 시적 성과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6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되었다. 초판본의 판형은 4·6판이며 168면의 양장본으로 모두 8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재판이 나왔다. 이 시집에는 책머리에 한용운 자신의 시적 지향을 암시하는 「군말」이 서문 형식으로 붙어 있고 말미에는 「독자에게」라는 글이 후기처럼 실렸다. 이 두 글은 한용운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시적 주제와 시 창작의 동기를 암시해주고 있다. 「군말」에서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님’이라는 특이한 존재를 ‘기룬 것은 모두 님’이라고 규정했으며, 독자의 후손에게는 이 책을 읽히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 글을 다시 음미하면서 『님의 침묵』 발간 백 년의 의미를 독 자와 함께 기리고자 한다.
— 편집자 해설(권영민)
군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저자著者
독자에게
독자讀者여 나는 시인詩人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子孫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菊花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雪嶽山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을축 팔월 이십구 일 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