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의 승화, 번뇌의 초월
이숭원
「무설설」 연작시 여섯 편 중 첫 작품이다. 무설설無說說은 설하는 바 없이 설한다는 뜻으로,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킨다. 무산 조오현은 『산에 사는 날에』(2001) 중간쯤 수록 되었던 「무설설」 연작시 다섯 편을,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만악가타집』(2002)에 한 편을 더 추가해서 맨 앞에 배치했다. 이러한 구성에 시인의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연작시를 독자에게 먼저 읽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시집 앞에 배치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초장이 조금 확대되고 중장이 많이 확장된 사설시조 형식이다. 산문체의 사설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형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강원도 어성전은 오대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계곡 주변의 지명이다. 물과 흙이 좋아 옹기 빚기에 좋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옹기를 빚고 살던 김 영감이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부인은 이미 삼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나 상제도 복인服人도 없는 장례식을 치른다. 이 외롭고 쓸쓸한 장례식에 조오현 시인은 무언가 의미 있는 작별의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말없이 뜻을 전하는 무설설의 방법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시인은 허구적 상황을 설정했다. 삼십 년 전에 죽은 부인의 혼령이 나타나 상여를 잡고 곡하면서 영감에게 한마디 풀어놓는 형식이다. 부인이 위로의 뜻으로 하소연 삼아 한 말은 “보이소 보이소 불길 같은 노염이라도 날 주고 가소 날 주고 가소”라는 외침이다. 옹기를 빚어 불로 구워냈으니, 불길을 지피는 일이 김 영감의 일상사였다. 젊은 시절 부부가 함께 살던 혈기 좋은 때는 불끈하고 노여움을 터뜨리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부인의 말에 죽은 김 영감의 혼령이 대답했다. “내 노염은 옹기로 옹기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었다”.
이러한 김 영감의 말은 그가 살아온 내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혼령끼리의 대화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그 자체가 ‘무설설’이다. 김 영감은 아내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삼십 년 동안 옹기를 만들면서 자신의 노여움과 회한을 모두 옹기에 담아 삭여냈다. 혼자 지내는 고독의 시간과 삶의 과정에서 번지는 모든 애환을 옹기에 담아 명품으로 빚어낸 것이다. 그에게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고통을 창조로 바꾸는 일종의 구도 행위였다. 산중의 승려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김 영감도 옹기를 빚음으로써 마음 수양을 한 것이다. 속인俗人의 길과 구도求道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무설설의 가르침으로 전했다.
이런 허구적 상상의 내용을 흥미롭게 이야기한 후 종장에서 어조를 바꾸어 그 말이 죽은 혼령의 대화가 아니라 사실은 상여꾼들이 웃음거리 삼아 한 말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상여꾼들도 그만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을 일꾼들의 농담으로 전환하여 이러한 이야기가 세속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유통되고 전파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고통의 승화, 번뇌의 초월이 진속眞俗의 구분 없이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이것이 무설설의 뜻이다.
논리적으로 일일이 따져 말하지 않아도 세상의 진실, 삶의 진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유통된다. 이 이치를 알아야 불법의 깨달음에 근접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쉬우면서도 어렵고, 깨달음의 길은 멀면서도 실은 가깝다. 공자도 이런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했는지 “能近取譬능근취비 仁之方也인지방야”라는 말을 했다. 가까운 데서 이치를 터득하면 이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저서로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시사』,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동주 시, 백 편』 등이 있다.
고통의 승화, 번뇌의 초월
이숭원
「무설설」 연작시 여섯 편 중 첫 작품이다. 무설설無說說은 설하는 바 없이 설한다는 뜻으로,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킨다. 무산 조오현은 『산에 사는 날에』(2001) 중간쯤 수록 되었던 「무설설」 연작시 다섯 편을,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만악가타집』(2002)에 한 편을 더 추가해서 맨 앞에 배치했다. 이러한 구성에 시인의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연작시를 독자에게 먼저 읽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시집 앞에 배치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초장이 조금 확대되고 중장이 많이 확장된 사설시조 형식이다. 산문체의 사설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형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강원도 어성전은 오대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계곡 주변의 지명이다. 물과 흙이 좋아 옹기 빚기에 좋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옹기를 빚고 살던 김 영감이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부인은 이미 삼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나 상제도 복인服人도 없는 장례식을 치른다. 이 외롭고 쓸쓸한 장례식에 조오현 시인은 무언가 의미 있는 작별의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말없이 뜻을 전하는 무설설의 방법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시인은 허구적 상황을 설정했다. 삼십 년 전에 죽은 부인의 혼령이 나타나 상여를 잡고 곡하면서 영감에게 한마디 풀어놓는 형식이다. 부인이 위로의 뜻으로 하소연 삼아 한 말은 “보이소 보이소 불길 같은 노염이라도 날 주고 가소 날 주고 가소”라는 외침이다. 옹기를 빚어 불로 구워냈으니, 불길을 지피는 일이 김 영감의 일상사였다. 젊은 시절 부부가 함께 살던 혈기 좋은 때는 불끈하고 노여움을 터뜨리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부인의 말에 죽은 김 영감의 혼령이 대답했다. “내 노염은 옹기로 옹기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었다”.
이러한 김 영감의 말은 그가 살아온 내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혼령끼리의 대화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그 자체가 ‘무설설’이다. 김 영감은 아내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삼십 년 동안 옹기를 만들면서 자신의 노여움과 회한을 모두 옹기에 담아 삭여냈다. 혼자 지내는 고독의 시간과 삶의 과정에서 번지는 모든 애환을 옹기에 담아 명품으로 빚어낸 것이다. 그에게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고통을 창조로 바꾸는 일종의 구도 행위였다. 산중의 승려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김 영감도 옹기를 빚음으로써 마음 수양을 한 것이다. 속인俗人의 길과 구도求道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무설설의 가르침으로 전했다.
이런 허구적 상상의 내용을 흥미롭게 이야기한 후 종장에서 어조를 바꾸어 그 말이 죽은 혼령의 대화가 아니라 사실은 상여꾼들이 웃음거리 삼아 한 말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상여꾼들도 그만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을 일꾼들의 농담으로 전환하여 이러한 이야기가 세속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유통되고 전파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고통의 승화, 번뇌의 초월이 진속眞俗의 구분 없이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이것이 무설설의 뜻이다.
논리적으로 일일이 따져 말하지 않아도 세상의 진실, 삶의 진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유통된다. 이 이치를 알아야 불법의 깨달음에 근접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쉬우면서도 어렵고, 깨달음의 길은 멀면서도 실은 가깝다. 공자도 이런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했는지 “能近取譬능근취비 仁之方也인지방야”라는 말을 했다. 가까운 데서 이치를 터득하면 이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저서로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시사』,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동주 시, 백 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