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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봄] 내 마음의 시 한 편 - 그래서 희망이 있다!

2026-03-10
조회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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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희망이 있다!

신달자


인간의 미래는 무엇이 끌고 가는가? 문학인가 과학인가. 나는 물론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문학 밭에서 칠십 년을 뒹굴었다. 그런데 그 문학이 존재하는 둘레에는 과학이 있었던 것이다. 과학은 인간이 존재하는 호흡을 뒷받침해주는 공기이고 바람이고 햇살이었던 것이다. 과학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 발전시키고 생명을 보호하는 신의 손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학이며 과학은 문학의 반대편이라고 생각하고 중학 시절부터 애정을 쏟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공부를 잘못했던 것이다. 


나는 늘 육체 바깥보다 안을 생각했다. 우르르 쾅쾅 내란을 일으키는 내면세계에 집중하면서 심리학은 재미가 있었는데 과학은 멀뚱멀뚱했다. 철이 들었다. 이 나이에 이제 와서 과학 의 눈부신 핵심을 향해 절을 한다. 내면에 빠져 있던 그 시간들 속에 과학이 날 존재케 했던 것을 알게 된다. 요즘은 음식점에 가도 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길도 핸드폰으로 안내받는 세상이다. 가정 안에서도 과학의 실체와 산다. 아니, 과학을 비켜서서 살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님을 뵈러 가면서 조금은 불안했다. 과학에 지나치게 무지한 모습을 보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숨기며 총장님 앞에 어색하게 앉았던 것이다. 


“카이스트 대학은 요즘 어떤 모습일까요?” 


“과학기술의 총본산입니다. 요즘 이공계가 적다고 말하지만 지원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이 보입니다. 총 1만 2천명입니다. 학부가 4천 명, 대학원이 8천 명이거든요. 연구개발의 경쟁이 뜨겁습니다


(총장님이 “그래서 희망이 보인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 ‘아, 이것이 제목이다’라고 생각했다.)


“네. 많은 과학기술의 숫자가 저희를 보호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죠. 반도체 휴대폰 등등 과학 안에는 알게 모르게 카이스트 출신들의 공헌이 많습니다. 인간의 행복에 큰 기여를 한다는 만족감이 있고요. 외국에 대항한다는 마음 자세도 굳게 잡혀 있습니다.” 


“이분들은 과학에만 몰두하나요?” 


“아닙니다. 문화예술을 밑바탕으로 기술을 쌓는 겁니다. 문화예술은 감정을 돌보는 것이라면 기술은 삶의 전부를 향상시키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 문화예술 혹은 과학 중 어느 하나가 인간에게 더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 팔과 다리와 같은 존재이니까. 서로 순환이라는 관계를 가지고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며 총체적 행복을 만들어가는 주역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이스트 대학은 1971년에 개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원조를 받아 만들었다. 그 당시 교육부가 반대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자는 고집 혹은 공론을 따라 학교는 하늘을 향해 세워졌던 것이다. 


“처음에 과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글짓기를 했는데 「나의 희망」 이라는 글에서 토머스 에디슨에 관해 읽고 그렇게 되어야겠다 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제 글을 읽어주며 ‘얘가 에디슨이 된대요’라고 했고 동네 사람들도 ‘에디슨 될 애’라고 말해주었지요. 전 공과대 산업공학, 그러니까 과학 쪽으로 공부하겠다는 결심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었습니다. 


결국 칭찬이 절 키웠다고 해도 되지요. 글짓기를 하면 그게 학교 교실 벽에 붙었는데 그것이 참 좋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면 그것도 벽에 붙었어요. 칭찬은 자존감을 키워주고 다음으로 나가는 발걸음에 힘이 붙게 했죠. 정읍초등학교, 사대부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로 갔습니다.”


“좋아하는 시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합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은 매력이 있었죠. 성경에도 ‘좁은 길’이 나오잖아요.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나오듯이 ‘큰길로 가기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다’라는 말을 뇌에 심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쪽으로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편한 길 을 마다하고 도전이라는 글자를 업고 살았습니다.”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여서 두 길을 모두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오래도록 서서 한 길이 덤불 사이로 굽어지는 곳까지

멀리 저 멀리까지 내다보았습니다. 


시인은 두 갈래 길 모두를 갈 수 없어 오래 서서 한 길을 끝까지 바라본 뒤 풀이 더 많고 인적이 덜한 쪽으로 가게 되었다며 그 선택이 인생을 달라지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시는 1915년 8월 『The Atlantic Monthly』에 최초로 실렸으며, 1916년 시집 『마운틴 인터벌(Mountain Interval)』 서두에 재수록되었다. 마치 이광형 총장님의 자화상 같은 시라고 할 수도 있다. 아, 네네,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총장님은 과학자로서 남이 가지 않는 길로 들어섰고 예술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넓혀가는 작업에 게으른 적이 없으신 분이다. 전공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 서로 이해하고 스며들어야 과학도 예술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총장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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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KAIST 총장.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 INSA 리옹(프랑스 국립 응용과학원)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5년 KAIST에 첫 부임했다. 캠퍼스 연못에서 오리와 거위를 기르고 티브이를 거꾸로 보는 등 괴짜 교수로 불린다. 200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바이오와 IT를 융합한 바이오 및 뇌 공학과를 설립했으며, 2022년 KAIST 총장 부임 후 디지털 인문 사회과학부를 출범시켰다. 1990년 백암기술상, 1999년 국무총리 정보문화상, 1999년 신지식인상, 2016년 국민훈장 동백장, 2020년 녹조근정훈장, 2020년 국회의장 공로장 외에 200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 슈발리에(Chevalier)를 서훈한데 이어 2025년 오피시에(Officer)로 승격되며 한-불 과학협력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프랑스에서 공부하셨나요?” 


“프랑스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고 1981년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모두 다들 미국으로 갈 때인데 전 프랑스를 선택했습니다. 그땐 프랑스와 한국의 격차가 심했어요. 지도교수에게 노력해서 프랑스보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을 한 기억은 새롭습니다.” 


삼십 년 후 지도교수님은 한국에 와보고는 벅찬 말투로 한 마디하셨다. 


“와, 너는 꿈을 이루었네. 한국을 보고 모두 놀란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 수준은?” 


“전 세계를 봐도 대단한 수준입니다. 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을 떼어놓고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순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K-Pop, K-Food, K-드라마. K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데 그 무게와 비교했을 때 과학은? 이런 질문은 무식한 질문입니까?” 


“안심은 안 되고 계속 달리기를 열심히 해야죠. 잎과 꽃이 핀다고 하는데 뿌리 없이 꽃은 못 피우는 게 아닙니까. 우린 뿌리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카이스트 대학의 미래는?”


“현재 열심히 잘해나가고 있어요. 우수한 연구 인력, AI와 학생이 공존하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저의 제1의 관심사는 ‘학생들을 잘 먹이고 재운다’입니다. ‘공부는 모두 다 잘한다, 문화예술을 강조해야 한다.’ 딱딱한 면이 부드러운 예술로 승화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일상의 탈출이 있어야 과학 기술 쪽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의 지능이 지닌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 시스템, 인공 시각, 문제 해결, 학습과 지식 획득, 인지 과학에 응용한다고 AI를 설명한다. 말하자면 인공지능, 인간의 학습·추론·지각 등 지적 능력을 전자적으로 구현한 컴퓨터 과학 분야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나는 너무 어렵다.


“어떨 때 행복하신가요?”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요. 너무 좋아합니다. 너무 예쁘거든요. 슬리퍼 신고 다니는 것도 보면 예뻐요. 정말 예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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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 춤추고 술 먹는 식당을 연다. 허가를 받았다. 


“댄스파티도 하고요. 이렇게 감정을 풀고 나면 더 무섭게 집 중해서 자기 과학의 세계로 몰입하거든요.”


뿐만 아니라 버스킹, 미술, 시 낭독회가 있는 ‘문학의 밤’을 연다고 하셨다. 정서적 교육 차원에서다. 앞으로 미래 국가의 이공계 교육 강화는 문화예술 분야의 결합이 중시될 것이라고 하셨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인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으로 더 강하게 몰입시키는 과정이겠지만 총장님은 정신 영역이 아주 넓으신 분이다. 과학을 꽉 채우고 거기에 예술에 대한 광휘로운 산과 바다가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과학을 하면서도 과학에 모든 생을 거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삶에 있어 문화예술이 숨을 트게 만드는 신비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며 그렇게 사시는 분이다. 하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형국이다. 


“총장님, 기쁜 소식을 신문에서 봤습니다. 이번에 프랑스 훈장을 받으셨던데요.”


 “프랑스에서 장학금을 받았잖아요. 돈 주고 키웠더니 카이스트 총장을 한다고 훈장을 주었어요.”


“어머나, 알아주어서 고맙네요. 또 신문에서 봤는데요, 카이스트 초빙 특임교수로 장한나 지휘자를 지명하셨더라고요.”


“아, 네. 조수미 씨, 지드래곤 씨도 교수예요.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복합적으로 섞어 새로운 미래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역시 놀라운 일이다. 예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 행복지수에 예술을 꼽는 과학도가 고맙기도 하고 신뢰가 가기도 한다. 각자 하고자 하는 일에 몇백 배 가능성을 여는 힘이 예술 속에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 아닌가.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AI와 공존하겠지요.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건 아니고 인간은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해야 해요. 인간은 여가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로마시대가 그 전성기에는 어떠했지요? 시민들은 놀고 노예들이 일을 했습니다. 콜로세움은 인간들이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어졌고 로마 황제 이 하는 빈둥거리기에 집중했어요.”


“AI는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가요?”

 

“AI가 산업의 일자리를 잡아먹기는 하겠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그 길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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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있습니까?”


“제 아내.”


오! 역시……. 1981년 결혼해서 딸, 아들을 하나씩 두고 과학적 행복을 누리고 사시는 것 같다.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자녀가 있습니까?”


“사위 하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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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1964년 『여상』 여류 신인 문학상을 통해 데뷔.
『열애』 『종이』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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