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장이 처사의 일로一路 정진
이숭원
조오현의 네 번째 시집 『절간 이야기』(2003) 제1부에는 ‘절간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32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중 「절간 이야기 30」은 3장 6구의 정형 시조로, 산문시가 주류를 이룬 이 묶음에 들어올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 시집 『아득한 성자』(2007)에는 이 시가 「죄와 벌」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수록되어 있다.
이 ‘절간 이야기’ 연작은 첫 시집 『심우도』(1979) 2부에 조오현이 담고자 했던 ‘경허鏡虛와의 만남’과 연결된 시편들이다. 그는 첫 시집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비구나 시인으로는 경허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곳은 내가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떠나는 길목이자 결별의 순간인 것이다.
경허 선사는 근대의 경계선에서 불교의 형식적 틀을 넘어선 과감한 무애행을 실행하여 한국의 선풍을 드높인 승려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뜻깊은 일화와 기행을 남기고, 「오도송」과 「심우송尋牛頌」을 비롯한 수백 편의 한시를 남겨 제자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불문을 떠나 시정의 거리로 들어가 평복을 입고 대중 교화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오현이 관심을 가진 대중 교화의 삶, 그가 담고자 했던 서민적 지향은 첫 시집 2부의 시편에는 아주 미미하게 드러난다. 그의 의식에 남아 있던 경허적 지향성이 나중에 「절간 이야기」 연작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그의 산문 연작시 「절간 이야기」에는 평범한 서민들의 땀 냄새 나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그가 보고자 했던 동대문시장이나 막노동판의 가난한 일꾼들의 삶, 그가 말한 ‘일꾼 보살’들의 삶이 구어口語의 화법으로 드러나 있다.
이 산문 연작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작품이 앞의 작품이다. 사십 년 동안 일을 해온 염장이 처사를 만난 이야기다. 그는 시신을 모실 때, 마치 자신의 친족을 대하듯이 정성을 다해 차별 없이 염을 한다. 오랫동안 일을 해오니 아무리 험한 시신을 대해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더 신경이 쓰인다. 이제는 시신만 보아도 그 사람의 과거 내력이 연상되는데, 죄를 많이 지은 것 같은 시신은 편안하게 살았을 시신보다 오히려 더 정이 가고 연민이 생겨 더 정성껏 염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것도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행동일지 모른다고 스스로 경계한다. 억지로 꾸며서 한다는 생각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 저절로 행해야 하는 것인데, 내 마음 편해지려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이기적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것이다. 이 처사는 불교에 입문한 승려는 아니지만 오래 수행하여 어느 경지에 오른 선사와 대등한 자리에 있다.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報施의 수행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무산 선사의 승속일여僧俗一如의 정신이 나타난다. 처사의 길과 선사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속세를 떠나 산림에 머물지 않아도 마음을 비우고 자기 일에 충실하면 그것 자체가 수행이고 참선이다. 이 염장이 노인의 말과 생각은 보살의 경지 바로 그대로다. 보살이나 부처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그것도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는 속세의 일꾼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이 곧 법신이고 그들의 말이 곧 법문이다. 조선조 말의 위대한 선승 경허 선사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었다.
여기 나오는 경상도 토박이말은 화자의 진정성과 진솔성을 드러내면서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불교적 진실을 유머러스하게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활력소의 역할도 한다. 그뿐 아니라 미학적 측면에서는 김소월과 김영랑, 백석, 서정주, 박목월로 이어져온, 토박이말의 시적 수용이라는 중요한 문학사적 사실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 일도 수행했다. 투박해 보이는 경상도 서민층의 어투를 시에 끌어들임으로써 주변적 언어가 서정시의 중심으로 상승하는 문학적 변환을 이룩 했다. 이것은 그가 마음으로 설정한 ‘만인 부처’의 주제, 부처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생각과도 통하는 문학적 성취이기도 하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저서로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시사』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동주 시, 백 편』 등이 있다.
염장이 처사의 일로一路 정진
이숭원
조오현의 네 번째 시집 『절간 이야기』(2003) 제1부에는 ‘절간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32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중 「절간 이야기 30」은 3장 6구의 정형 시조로, 산문시가 주류를 이룬 이 묶음에 들어올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 시집 『아득한 성자』(2007)에는 이 시가 「죄와 벌」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수록되어 있다.
이 ‘절간 이야기’ 연작은 첫 시집 『심우도』(1979) 2부에 조오현이 담고자 했던 ‘경허鏡虛와의 만남’과 연결된 시편들이다. 그는 첫 시집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비구나 시인으로는 경허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곳은 내가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떠나는 길목이자 결별의 순간인 것이다.
경허 선사는 근대의 경계선에서 불교의 형식적 틀을 넘어선 과감한 무애행을 실행하여 한국의 선풍을 드높인 승려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뜻깊은 일화와 기행을 남기고, 「오도송」과 「심우송尋牛頌」을 비롯한 수백 편의 한시를 남겨 제자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불문을 떠나 시정의 거리로 들어가 평복을 입고 대중 교화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오현이 관심을 가진 대중 교화의 삶, 그가 담고자 했던 서민적 지향은 첫 시집 2부의 시편에는 아주 미미하게 드러난다. 그의 의식에 남아 있던 경허적 지향성이 나중에 「절간 이야기」 연작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그의 산문 연작시 「절간 이야기」에는 평범한 서민들의 땀 냄새 나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그가 보고자 했던 동대문시장이나 막노동판의 가난한 일꾼들의 삶, 그가 말한 ‘일꾼 보살’들의 삶이 구어口語의 화법으로 드러나 있다.
이 산문 연작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작품이 앞의 작품이다. 사십 년 동안 일을 해온 염장이 처사를 만난 이야기다. 그는 시신을 모실 때, 마치 자신의 친족을 대하듯이 정성을 다해 차별 없이 염을 한다. 오랫동안 일을 해오니 아무리 험한 시신을 대해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더 신경이 쓰인다. 이제는 시신만 보아도 그 사람의 과거 내력이 연상되는데, 죄를 많이 지은 것 같은 시신은 편안하게 살았을 시신보다 오히려 더 정이 가고 연민이 생겨 더 정성껏 염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것도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행동일지 모른다고 스스로 경계한다. 억지로 꾸며서 한다는 생각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 저절로 행해야 하는 것인데, 내 마음 편해지려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이기적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것이다. 이 처사는 불교에 입문한 승려는 아니지만 오래 수행하여 어느 경지에 오른 선사와 대등한 자리에 있다.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報施의 수행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무산 선사의 승속일여僧俗一如의 정신이 나타난다. 처사의 길과 선사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속세를 떠나 산림에 머물지 않아도 마음을 비우고 자기 일에 충실하면 그것 자체가 수행이고 참선이다. 이 염장이 노인의 말과 생각은 보살의 경지 바로 그대로다. 보살이나 부처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그것도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는 속세의 일꾼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이 곧 법신이고 그들의 말이 곧 법문이다. 조선조 말의 위대한 선승 경허 선사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었다.
여기 나오는 경상도 토박이말은 화자의 진정성과 진솔성을 드러내면서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불교적 진실을 유머러스하게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활력소의 역할도 한다. 그뿐 아니라 미학적 측면에서는 김소월과 김영랑, 백석, 서정주, 박목월로 이어져온, 토박이말의 시적 수용이라는 중요한 문학사적 사실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 일도 수행했다. 투박해 보이는 경상도 서민층의 어투를 시에 끌어들임으로써 주변적 언어가 서정시의 중심으로 상승하는 문학적 변환을 이룩 했다. 이것은 그가 마음으로 설정한 ‘만인 부처’의 주제, 부처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생각과도 통하는 문학적 성취이기도 하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저서로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시사』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동주 시, 백 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