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된 사람 소리 들으려면
이숭원
‘일색변一色邊’이란 선가禪家의 용어로 상대적 분별을 떠난 불이不二의 경지를 뜻한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공空의 실상을 터득한 경지다.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세생생 이어지는 끝없는 수행의 과정이 필요하다.
무산스님은 두 번째 시집 『산에 사는 날에』(2001)에 「일색변」이라는 제목의 연작시 여덟 편을 수록했다. 이 작품은 만악문도회에서 펴낸 『만악가타집』(2002)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그 후 김재홍 교수가 펴낸 『아득한 성자』(2007)에도 이 여덟편이 모두 수록되었는데, 제목이 바뀌어 실렸다. ‘일색변’이라는 제목은 사라지고 ‘바위 소리’, ‘고목 소리’, ‘몰현금 한 줄’, ‘시간론’ 등 완전히 새로운 제목이 제시되어, 이 시집만 보면 각각의 새로운 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무산스님 생전에 최종적으로 간행된 『마음 하나』(2013)에는 여섯 편만 수록하면서 제목을 시에 나오는 어구로 다시 바꾸어 ‘고목 소리 들으려면’, ‘바위 소리 들으려면’, ‘장부 소리 들으려면’, ‘여자 소리 들으려면’, ‘중놈 소리 들으려면’으로 설정하고, ‘마음 하나’는 따로 실었다.
이렇게 제목을 바꾸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무산스님이 처음에 지녔던 연작시 창작의 취지, 즉 ‘일색변’에 이르기 위한 수도 정진의 자세라는 초발심의 뜻은 희석된다. 대중적 친화력을 따를 것이냐, 초발심의 취지를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후세에 이 작품의 제목을 어떻게 전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여덟 편의 연작시 중 「일색변 1」과 「일색변 2」를 읽는다.
수행의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구도의 길에 선 수행자는 최종의 목표를 향해 용맹정진해야 한다. 「일색변 1」은 세상의 변화를 초탈하여 정진하는 수행승의 자세를 바위에 비유했다. 한 덩이 바위가 제대로 된 바위가 되려면 들어 올리려 해도 끝내 들리지 않을 묵중한 중량감을 가져야 하며 오랜 수행의 자취를 드러내는 검버섯 같은 것도 거뭇거뭇 피어 있어야 제대로 수행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일색변 2」는 수행자의 자세를 고목에 비유했다. 늙은 나무가 제대로 된 고목이 되려면 세상의 고초에 시달려 속은 썩고 가지는 부러지고 등걸은 휘어진 데 더하여 고된 수행의 결과 세월의 매를 맞은 흔적까지 남아 있어야 제대로 수행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 비유에서 확인되는 것은 수행자가 지닌 불변의 견인력과 고통을 이겨내는 의연함이다. 검버섯이 피든 장독이 번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러한 조언과 당부는 일차적으로 수행자의 자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목표를 두고 어떤 일에 매진하는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무산스님은 승속일여僧俗一如의 정신으로 일색변의 수도 정진을 대중의 사회생활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우리가 사회에서 원하는 일을 이루려면 가장 필요한 자세가 불변성이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거나 노심초사하는 데서 벗어나 묵중한 바위나 의연한 고목처럼 일관되게 처음의 뜻을 밀고 나가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별 성과가 없어 검버섯만 늘어나는 것 같고 매 맞은 자국만 늘어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쌓아온 공력이 선인善因 선연善緣이 되어 종국에는 원하는 결실을 얻게 된다. 세파에 시달려 가지가 부러지고 속이 썩어가는 듯해도 인과 연기의 원리가 고진감래의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원리임을 믿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실행함이 옳은 일이다. 제대로 된 사람 소리를 들으려면 마땅히 이렇게 행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저서로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시사』,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동주 시, 백 편』 등을 냈다.
제대로 된 사람 소리 들으려면
이숭원
‘일색변一色邊’이란 선가禪家의 용어로 상대적 분별을 떠난 불이不二의 경지를 뜻한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공空의 실상을 터득한 경지다.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세생생 이어지는 끝없는 수행의 과정이 필요하다.
무산스님은 두 번째 시집 『산에 사는 날에』(2001)에 「일색변」이라는 제목의 연작시 여덟 편을 수록했다. 이 작품은 만악문도회에서 펴낸 『만악가타집』(2002)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그 후 김재홍 교수가 펴낸 『아득한 성자』(2007)에도 이 여덟편이 모두 수록되었는데, 제목이 바뀌어 실렸다. ‘일색변’이라는 제목은 사라지고 ‘바위 소리’, ‘고목 소리’, ‘몰현금 한 줄’, ‘시간론’ 등 완전히 새로운 제목이 제시되어, 이 시집만 보면 각각의 새로운 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무산스님 생전에 최종적으로 간행된 『마음 하나』(2013)에는 여섯 편만 수록하면서 제목을 시에 나오는 어구로 다시 바꾸어 ‘고목 소리 들으려면’, ‘바위 소리 들으려면’, ‘장부 소리 들으려면’, ‘여자 소리 들으려면’, ‘중놈 소리 들으려면’으로 설정하고, ‘마음 하나’는 따로 실었다.
이렇게 제목을 바꾸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무산스님이 처음에 지녔던 연작시 창작의 취지, 즉 ‘일색변’에 이르기 위한 수도 정진의 자세라는 초발심의 뜻은 희석된다. 대중적 친화력을 따를 것이냐, 초발심의 취지를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후세에 이 작품의 제목을 어떻게 전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여덟 편의 연작시 중 「일색변 1」과 「일색변 2」를 읽는다.
수행의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구도의 길에 선 수행자는 최종의 목표를 향해 용맹정진해야 한다. 「일색변 1」은 세상의 변화를 초탈하여 정진하는 수행승의 자세를 바위에 비유했다. 한 덩이 바위가 제대로 된 바위가 되려면 들어 올리려 해도 끝내 들리지 않을 묵중한 중량감을 가져야 하며 오랜 수행의 자취를 드러내는 검버섯 같은 것도 거뭇거뭇 피어 있어야 제대로 수행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일색변 2」는 수행자의 자세를 고목에 비유했다. 늙은 나무가 제대로 된 고목이 되려면 세상의 고초에 시달려 속은 썩고 가지는 부러지고 등걸은 휘어진 데 더하여 고된 수행의 결과 세월의 매를 맞은 흔적까지 남아 있어야 제대로 수행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 비유에서 확인되는 것은 수행자가 지닌 불변의 견인력과 고통을 이겨내는 의연함이다. 검버섯이 피든 장독이 번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러한 조언과 당부는 일차적으로 수행자의 자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목표를 두고 어떤 일에 매진하는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무산스님은 승속일여僧俗一如의 정신으로 일색변의 수도 정진을 대중의 사회생활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우리가 사회에서 원하는 일을 이루려면 가장 필요한 자세가 불변성이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거나 노심초사하는 데서 벗어나 묵중한 바위나 의연한 고목처럼 일관되게 처음의 뜻을 밀고 나가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별 성과가 없어 검버섯만 늘어나는 것 같고 매 맞은 자국만 늘어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쌓아온 공력이 선인善因 선연善緣이 되어 종국에는 원하는 결실을 얻게 된다. 세파에 시달려 가지가 부러지고 속이 썩어가는 듯해도 인과 연기의 원리가 고진감래의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원리임을 믿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실행함이 옳은 일이다. 제대로 된 사람 소리를 들으려면 마땅히 이렇게 행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데뷔.
저서로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시사』, 『시 읽는 마음』, 『백석 시, 백 편』, 『동주 시, 백 편』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