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인표는 사람이다
신달자
사무실 문을 열고 기다리는 사람은 차인표 작가였다. 늠름하고 상냥하고……. 우리는 손님이다. 그는 맑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에게서는 ‘저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의 말 그의 행동은 단정 하면서 친절했다.
그는 사람이다. 내가 평소에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최고의 모델을 차인표에게서 느꼈다는 것이 이 만남의 첫 생각이었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 배우다. 잘생긴 얼굴과 연기, 품 격 있는 대외 활동의 마음 씀씀이가 모두 최고의 평가를 받 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잘 사는 사람이다’라는 풍문이 그렇게 불었다. 살아가면서 ‘잘’이란 이 한마디를 듣는 건 참 어렵다. ‘그런대로 잘……’이 아니라 완벽하게 ‘잘’. 이 하나의 수식어 를 붙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잘 산다’라 는 것은 넉넉하게 사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과 사랑과 헌신 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차인표는 그 세 가지 모두를 실생활에 서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차인표 배우의 모습을 바로 앞에 서 확인하는 일은 기쁨이었다.
“배우가 된 동기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한진해운 뉴욕지점에서 일했는데 일 년 다니고 그만뒀습니다. 적성에 영 맞지 않은 게 이유였습니다. 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그때 스물 여섯 살이었습니다. 백수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공채 탤런트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지요. 연기학원을 드나들기도 했는데, KBS와 SBS 시험에 떨어졌어요. 포기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함께 MBC 공채 22기 신인 연기자로 출발했습니다. 여자 열여덟 명, 남자 일곱 명이 뽑혔는데 1등을 했어요. 그러나 일 년 내내 단역만 맡았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월급 25만 원에 추가로 2만 원을 더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소속감이 나를 곧추세웠습니다. 그러다가 <한지붕 세가족>에 깡패 역으로 출연하면서 조금씩 존재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좋아하는 시는?”
“정현종 선생님의 「방문객」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까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방문객」은 한 사람의 인격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그리고 소통한다는 차인표의 통합적인 인간성을 알아보게 하는 시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설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더욱 일생을 들고 가진 않았다. 순전히 방문을 받아들이는 측에서 모든 일생을 갖고 온 느낌이었는데, 한마디로 참 놀라운 성찰을 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인연과 마주침이 사실 짧은 인간사에서는 놀라운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녹아든 시간의 결정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애송시는 그의 미소와 닮아 있었다.
드디어 그는 MBC 베스트극장 <하얀 여로> <사랑을 그대 품 안에> 등 주인공으로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벼락스타’라는 말을 들으며 우뚝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994년이었다.
“배우 생활에 대한 생각, 후회 혹은 자족감은?”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동네 친구들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어요.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제게 있었어요. 배우로 삼십 년을 살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할걸……, 배우로서 더 열정을 쏟을걸……. 사고의 깊이가 좁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보니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살아 있다. 언젠가는 끝난다’라는 자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하루분으로 와준 시간을 경험하며 하루의 본질에 충실하려 합니다. 경험이 삶이고 그것은 남게 될 테니까요.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일 겁니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철학자의 깊이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 차인표는 이런 사람이구나, 결코 가볍지도 슬쩍 지나치려고도 하지 않는……. 시간을 등에 지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사용하는……. 이제 하고 싶은 질문을 하자. 나는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설은 왜 쓰게 되었나요?”
“2009년에 첫 소설을 썼습니다. 1997년 군 제대를 한 뒤 어느 날, 캄보디아에서 살던 위안부 할머니가 귀국하는 장면을 티브이를 통해 보게 되었어요. 오십여 년 만에 돌아온 그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픈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 시대의 비극과 지켜주지 못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책, 그리고 복잡한 울분이 저를 괴롭혔지요. 감동도 받았습니다. 훈 할머니는 오십여 년 만에 자신의 땅에서 〈아리랑〉을 불렀는데 그 목소리가 피처럼 제 가슴에 흘러내렸습니다.”

차인표 배우. 소설가. 1967년 서울에서 출생해 미국에서 자랐다. 1993년 MBC 공채 탤런트 입사 후 <한지붕 세가족> <파일럿> 등의 드라마에서 단역을 거치다 1994년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대표작으로 <별은 내 가슴에> <왕초> <완전한 사랑>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등이 있으며, 다수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2009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을 집필, 십 년 만에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한 후 『오늘예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인어 사냥』 『그들의 하루』 등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2025년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신진상 수상.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분노와 안타까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물론 전 부족하지만, 소설이란 걸 완전히 알지도 못했지만, 가슴에 들끓는 이야기를 가슴으로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와 관련 있는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했고, 연기도 하지 않은 채 위안부 할머니들과 자주 만났습니다. 가슴만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죠.”
“2007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는데 아홉 명의 할머니들이 모두 한복을 입으시고 마당에서 영정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조선희 사진작가의 자원봉사로 이뤄진 자리였죠. 모든 일들이 기적이고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다시 결심을 하게 되었죠. 사실을 사실대로 조목조목 밝혀둔다는 뜻으로 작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머니와 수백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와 소설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논의했습니다. 어머니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화라도 써서 위로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소설로 안착을 했습니다. 그렇게 원하시는 ‘사과’를 소설에서라도 이뤄드리고 싶었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늘 속이 아팠습니다. 용서와 사과가 들어 있는 소설을 그분들에게 가져갔지요. ‘배우가 소설을 썼네!’ 하고 좋아하셨습니다.”
“만족하셨습니까?”
“교보에선 제 책을 연예인 출판물 매대에 놓아두었더라고요. 아, 나는 연예인이구나. 아직 소설가는 아니구나. 꾸준히 써야 한다. 타인에게 소설가라고 보여질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음 소설은?”
“쓰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내년에 마치려고 해요.”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나요?”
“어머니입니다. 아침에 안녕히 주무셨냐고 묻고, 식사는 하셨는지, 지금 뭘 하고 계신지 자주 연락하고 대화합니다. 날씨 이야기, 일 이야기, 오늘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많은 걸 이야기합니다. 43년생이신데요, 저에게는 멘토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입니다. 하루에 어머니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나는 차인표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런 아들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말은 안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참으로 부러웠던 순간이었다.
“‘차인표는 선하다’라고 하면 맞나요?”

“전 보통 사람입니다. 성격도 급해서 아내에게 늘 지적을 받아요. 그러나 선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부부싸움을 해보셨나요?”
“그럼요. 아내는 상냥하고 질서정연한데 전 그렇지 못해요.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신애라 말고는 아내 될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 수긍하시나요?”
“네. 제게 과분한 사람입니다.”
“예술은 왜 필요한가요?”
“사람은 동물과 다릅니다. 사람은 연약하지요. 날개도 없고요. 그래서 인간은 함께 살 수밖에 없어요. 생존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전 생각합니다. 상대가 존엄하다는 걸 아는 도구로서 예술은 필요하다고.”
예술에 대한 각도는 각각이지만 차인표는 ‘나’가 아니라 ‘너’를 위한 도구로 예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흔히 예술의 첫 시동은 마음이라는 미지의 대상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깊이도 무게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속 반란을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펼쳐내는데 그 결과물이 결국 예술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이며 위로이며 공감대 형성일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까요?”
“너무 많아서 말을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답하고 얼굴 표정이 복잡할 때 나는 다시 물었다.
“모든 게 완벽해도 ‘쓸쓸할 때’가 있지 않나요?”
“고독은 기본 값입니다. 지금도 고독합니다. 쓸쓸함은 다른 관계가 아닌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쓸쓸함은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가령 내가 날 잘 모르는 쓸쓸함 같은 거…….”
차인표 작가는 심오한 부분이 크다. 대충, 함부로, 적당히, 그런 건 없어 보인다. ‘외로움’하고는 조금 다른 ‘쓸쓸함’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작가로서의 정신 자세는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조지은 교수는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보고 K문학을 영국 출판사에 소개하면서 차인표 작가를 알린 사람이다. 한국에도 오셨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세 권을 드렸는데 위안부 관련 문학 수업의 교재로 삼고 싶다고 하셨다. 그는 그렇게 충분한 자격을 갖춘 차인표 작가를 딱 알아보신 분이리라. 무엇보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작가로서 강의를 한 경험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 아닐까. 교수님께 유럽의 청소년들에게 소설을 읽히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특강를 해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강의실에는 백 명 정도 온 것 같았어요. 한국인은 한 쉰 명 쯤이었고요. 방학이었기 때문에 숫자는 감안을 해야 했지요. 그날 마침 옥스퍼드대학에 일본 천황이 왔었어요. 복잡한 분위기를 무릅쓰고 제 특강은 박수 소리로 마감을 했습니다.”
2009년에 쓴 『잘가요 언덕』이 2021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해결책 출판사의 제안이 있었다. 이렇게 다시 몸을 바꾼 소설은 독자들의 가슴에 와닿았다. 세계인들의 마음에도 가서 닿았다. 차인표 소설은 거리감이 사라졌다.
“인표야, 작가에게 상상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을 배제한 상상력은 모래로 성을 쌓는 것과 같은 거란다.”
어머니의 메일 속 말씀은 차인표 작가의 가는 길에 늘 태양처럼 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고 지혜로운 신애라 씨의 따듯한 배려도 차인표 작가의 상상 속에 하나의 물줄기로 아름답게 흐를 것이다
“와! 아침에 황순원문학상 신진상을 받으신다는 기사를 봤 어요. 차인표 작가의 소설에 대한 의지에 근육이 더 탄탄하게 붙을 것입니다.”
차인표 작가님, 다음 작품 기대합니다.

신달자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
『열애』 『종이』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를 펴냈다.
차인표는 사람이다
신달자
사무실 문을 열고 기다리는 사람은 차인표 작가였다. 늠름하고 상냥하고……. 우리는 손님이다. 그는 맑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에게서는 ‘저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의 말 그의 행동은 단정 하면서 친절했다.
그는 사람이다. 내가 평소에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최고의 모델을 차인표에게서 느꼈다는 것이 이 만남의 첫 생각이었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 배우다. 잘생긴 얼굴과 연기, 품 격 있는 대외 활동의 마음 씀씀이가 모두 최고의 평가를 받 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잘 사는 사람이다’라는 풍문이 그렇게 불었다. 살아가면서 ‘잘’이란 이 한마디를 듣는 건 참 어렵다. ‘그런대로 잘……’이 아니라 완벽하게 ‘잘’. 이 하나의 수식어 를 붙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잘 산다’라 는 것은 넉넉하게 사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과 사랑과 헌신 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차인표는 그 세 가지 모두를 실생활에 서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차인표 배우의 모습을 바로 앞에 서 확인하는 일은 기쁨이었다.
“배우가 된 동기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한진해운 뉴욕지점에서 일했는데 일 년 다니고 그만뒀습니다. 적성에 영 맞지 않은 게 이유였습니다. 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그때 스물 여섯 살이었습니다. 백수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공채 탤런트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지요. 연기학원을 드나들기도 했는데, KBS와 SBS 시험에 떨어졌어요. 포기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함께 MBC 공채 22기 신인 연기자로 출발했습니다. 여자 열여덟 명, 남자 일곱 명이 뽑혔는데 1등을 했어요. 그러나 일 년 내내 단역만 맡았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월급 25만 원에 추가로 2만 원을 더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소속감이 나를 곧추세웠습니다. 그러다가 <한지붕 세가족>에 깡패 역으로 출연하면서 조금씩 존재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좋아하는 시는?”
“정현종 선생님의 「방문객」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까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방문객」은 한 사람의 인격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그리고 소통한다는 차인표의 통합적인 인간성을 알아보게 하는 시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설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더욱 일생을 들고 가진 않았다. 순전히 방문을 받아들이는 측에서 모든 일생을 갖고 온 느낌이었는데, 한마디로 참 놀라운 성찰을 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인연과 마주침이 사실 짧은 인간사에서는 놀라운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녹아든 시간의 결정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애송시는 그의 미소와 닮아 있었다.
드디어 그는 MBC 베스트극장 <하얀 여로> <사랑을 그대 품 안에> 등 주인공으로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벼락스타’라는 말을 들으며 우뚝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994년이었다.
“배우 생활에 대한 생각, 후회 혹은 자족감은?”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동네 친구들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어요.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제게 있었어요. 배우로 삼십 년을 살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할걸……, 배우로서 더 열정을 쏟을걸……. 사고의 깊이가 좁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보니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살아 있다. 언젠가는 끝난다’라는 자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하루분으로 와준 시간을 경험하며 하루의 본질에 충실하려 합니다. 경험이 삶이고 그것은 남게 될 테니까요.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일 겁니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철학자의 깊이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 차인표는 이런 사람이구나, 결코 가볍지도 슬쩍 지나치려고도 하지 않는……. 시간을 등에 지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사용하는……. 이제 하고 싶은 질문을 하자. 나는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설은 왜 쓰게 되었나요?”
“2009년에 첫 소설을 썼습니다. 1997년 군 제대를 한 뒤 어느 날, 캄보디아에서 살던 위안부 할머니가 귀국하는 장면을 티브이를 통해 보게 되었어요. 오십여 년 만에 돌아온 그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픈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 시대의 비극과 지켜주지 못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책, 그리고 복잡한 울분이 저를 괴롭혔지요. 감동도 받았습니다. 훈 할머니는 오십여 년 만에 자신의 땅에서 〈아리랑〉을 불렀는데 그 목소리가 피처럼 제 가슴에 흘러내렸습니다.”
차인표 배우. 소설가. 1967년 서울에서 출생해 미국에서 자랐다. 1993년 MBC 공채 탤런트 입사 후 <한지붕 세가족> <파일럿> 등의 드라마에서 단역을 거치다 1994년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대표작으로 <별은 내 가슴에> <왕초> <완전한 사랑>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등이 있으며, 다수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2009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을 집필, 십 년 만에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한 후 『오늘예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인어 사냥』 『그들의 하루』 등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2025년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신진상 수상.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분노와 안타까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물론 전 부족하지만, 소설이란 걸 완전히 알지도 못했지만, 가슴에 들끓는 이야기를 가슴으로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와 관련 있는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했고, 연기도 하지 않은 채 위안부 할머니들과 자주 만났습니다. 가슴만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죠.”
“2007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는데 아홉 명의 할머니들이 모두 한복을 입으시고 마당에서 영정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조선희 사진작가의 자원봉사로 이뤄진 자리였죠. 모든 일들이 기적이고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다시 결심을 하게 되었죠. 사실을 사실대로 조목조목 밝혀둔다는 뜻으로 작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머니와 수백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와 소설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논의했습니다. 어머니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화라도 써서 위로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소설로 안착을 했습니다. 그렇게 원하시는 ‘사과’를 소설에서라도 이뤄드리고 싶었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늘 속이 아팠습니다. 용서와 사과가 들어 있는 소설을 그분들에게 가져갔지요. ‘배우가 소설을 썼네!’ 하고 좋아하셨습니다.”
“만족하셨습니까?”
“교보에선 제 책을 연예인 출판물 매대에 놓아두었더라고요. 아, 나는 연예인이구나. 아직 소설가는 아니구나. 꾸준히 써야 한다. 타인에게 소설가라고 보여질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음 소설은?”
“쓰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내년에 마치려고 해요.”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나요?”
“어머니입니다. 아침에 안녕히 주무셨냐고 묻고, 식사는 하셨는지, 지금 뭘 하고 계신지 자주 연락하고 대화합니다. 날씨 이야기, 일 이야기, 오늘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많은 걸 이야기합니다. 43년생이신데요, 저에게는 멘토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입니다. 하루에 어머니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나는 차인표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런 아들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말은 안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참으로 부러웠던 순간이었다.
“‘차인표는 선하다’라고 하면 맞나요?”
“전 보통 사람입니다. 성격도 급해서 아내에게 늘 지적을 받아요. 그러나 선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부부싸움을 해보셨나요?”
“그럼요. 아내는 상냥하고 질서정연한데 전 그렇지 못해요.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신애라 말고는 아내 될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 수긍하시나요?”
“네. 제게 과분한 사람입니다.”
“예술은 왜 필요한가요?”
“사람은 동물과 다릅니다. 사람은 연약하지요. 날개도 없고요. 그래서 인간은 함께 살 수밖에 없어요. 생존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전 생각합니다. 상대가 존엄하다는 걸 아는 도구로서 예술은 필요하다고.”
예술에 대한 각도는 각각이지만 차인표는 ‘나’가 아니라 ‘너’를 위한 도구로 예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흔히 예술의 첫 시동은 마음이라는 미지의 대상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깊이도 무게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속 반란을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펼쳐내는데 그 결과물이 결국 예술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이며 위로이며 공감대 형성일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까요?”
“너무 많아서 말을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답하고 얼굴 표정이 복잡할 때 나는 다시 물었다.
“모든 게 완벽해도 ‘쓸쓸할 때’가 있지 않나요?”
“고독은 기본 값입니다. 지금도 고독합니다. 쓸쓸함은 다른 관계가 아닌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쓸쓸함은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가령 내가 날 잘 모르는 쓸쓸함 같은 거…….”
차인표 작가는 심오한 부분이 크다. 대충, 함부로, 적당히, 그런 건 없어 보인다. ‘외로움’하고는 조금 다른 ‘쓸쓸함’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작가로서의 정신 자세는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조지은 교수는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보고 K문학을 영국 출판사에 소개하면서 차인표 작가를 알린 사람이다. 한국에도 오셨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세 권을 드렸는데 위안부 관련 문학 수업의 교재로 삼고 싶다고 하셨다. 그는 그렇게 충분한 자격을 갖춘 차인표 작가를 딱 알아보신 분이리라. 무엇보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작가로서 강의를 한 경험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 아닐까. 교수님께 유럽의 청소년들에게 소설을 읽히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특강를 해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강의실에는 백 명 정도 온 것 같았어요. 한국인은 한 쉰 명 쯤이었고요. 방학이었기 때문에 숫자는 감안을 해야 했지요. 그날 마침 옥스퍼드대학에 일본 천황이 왔었어요. 복잡한 분위기를 무릅쓰고 제 특강은 박수 소리로 마감을 했습니다.”
2009년에 쓴 『잘가요 언덕』이 2021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해결책 출판사의 제안이 있었다. 이렇게 다시 몸을 바꾼 소설은 독자들의 가슴에 와닿았다. 세계인들의 마음에도 가서 닿았다. 차인표 소설은 거리감이 사라졌다.
“인표야, 작가에게 상상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을 배제한 상상력은 모래로 성을 쌓는 것과 같은 거란다.”
어머니의 메일 속 말씀은 차인표 작가의 가는 길에 늘 태양처럼 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고 지혜로운 신애라 씨의 따듯한 배려도 차인표 작가의 상상 속에 하나의 물줄기로 아름답게 흐를 것이다
“와! 아침에 황순원문학상 신진상을 받으신다는 기사를 봤 어요. 차인표 작가의 소설에 대한 의지에 근육이 더 탄탄하게 붙을 것입니다.”
차인표 작가님, 다음 작품 기대합니다.
신달자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
『열애』 『종이』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