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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겨울] 한국문학, 노벨문학상 이후의 길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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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우리 작가 한강을 호명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면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히는 순간 나는 두 손을 들고 환호했다. 해마다 외신들이 전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문학이 언제쯤 저런 영예를 안게 될지 주눅이 든 채 부러워했다. 그런데 한강이 저력을 보여주면서 자기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고 세계문학의 무대에 당당하게 올라섰다.


노벨문학상 소식을 접한 번역가 브루스 풀턴 교수는 ‘한국문학 만세!’라고 메일을 보내왔고, 버클리대학 한국학센터 소장을 지낸 클레어 유 교수는 한국 여성 작가의 노벨상에 더욱 감격하 여 가슴이 뛴다고 메일에 적었다. 중국의 한국문학 연구자 니우 린지에 교수는 해외 한국문학 연구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영광스러운 소식이라고 기쁨을 표했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는 인나 최 교수는 소설 「몽고반점」의 이상문학상 수상에서부터 이 작가의 독특한 관점과 기법이 주목되 었다며 내게 축하한다는 말을 메일에 적었다. 인도 네루대학의 라비케시 교수는 한글 주간에 듣게 된 노벨문학상 소식이 더욱 반가웠다고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왔다. 버클리대학에서 내 강의시간에 『채식주의자』를 읽었던 젊은 번역가 김유정 씨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에 먼저 내 모습이 떠올랐다고 카톡 문자를 전해 왔다.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글로벌 작가로 재탄생했다. 참으로 장하고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노벨문학상은 세계문학의 빛나는 꽃이다. 노벨문학상 자체가 문학의 최고 가치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는 아니지만, 상의 권위와 영예는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정도로 크고 높다. 하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학 전체가 단번에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높아졌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한국문학은 여전히 세계문학의 중심부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외국 독자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물론 그 역사와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이미 세계문학의 한복판에서 독특한 자기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웬만한 서점 문학 코너에 가보면, 중국 문학이나 일본 문학 책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번역 출간된 문학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적인 연구 서적도 적지 않다. 외국의 유명 대학에는 중국이나 일본 문학 연구자들이 많고, 중국 문학이나 일본 문학을 전공하겠다는 젊은 학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한국문학을 가르친 경우가 많지 않고, 외국인 번역 전문가 양성에 공을 들인 적도 별로 없다.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외국인 학자가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의 연구 업적도 제대로 책으로 출간되어 주목받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문학작품이 번역 출판되어 해외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근래의 일이니, 외국인 독자가 우리 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길 기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외국의 중요 대학 도서관 중에는 한국문학 책들을 비치한 곳도 있지만, 관심을 두고 찾아보는 이가 별로 없다. 우리 문학은 세계 무대에서 이처럼 한심한 지경에 놓여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흥분하고 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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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나오는 통계를 보면 매년 1만 5천여 종의 문학작품이 영어로 출판된다. 그 가운데 영어 번역 출판물이 약 3%에 해당한다. 비영어권에서 나온 이 번역 작품의 분포를 보면 아시아권에서 나온 것이 대략 50여 종에 이른다. 한국문학도 매년 10여 종 안팎의 문학작품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영어로 번역 출판된다. 그리고 이 책들이 전 세계 영어권 독자들을 향해 출판시장에서 서로 경쟁한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문학작품 가운데 우리 문학작품이 몇 권 끼어들어 있는 셈인데, 이것을 일반 독자가 찾아내어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관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 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만 되면 많은 외국의 독자들이 환호하며 이를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이 같은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한국문학의 세계 무대 진출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하고 있는 우리 출판사의 노력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출판사가 먼저 작품의 훌륭한 번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작품의 내용과 작가의 활동을 소개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소한 외국 작품을 독자들이 골라 읽기 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문학 작품이 해외에 번역 출판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 소개하는 작업은 까다롭고 힘이 드는 일이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 문제도 그 관건이 질 좋은 번역에 달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국내 문단에서 먼저 주목받았으며 한국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영국인 전문 번역가를 만났다. 이 젊은 번역가는 한강 문학의 본질을 잘 꿰뚫었고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한강의 문체를 수려한 영어로 살려냈다. 그런데도 이 책의 영어 번역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제기된 적이 있다. 번역이란 하나의 텍 스트가 서로 다른 언어의 경계를 통과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충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문학작품의 번역은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텍스트의 번역 작업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문학 작품의 번역 작업에서 언어 표현의 방식과 그 양식적 요구가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경우 결국 번역자의 능력과 그 문학적 감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 문학은 한국어를 기반으로 그 정서의 고유성과 정체성 이 확립된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는 반드 시 번역이라는 과정을 통해 언어 장벽을 넘어서야만 한다. 우리 문학의 세계적 확산은 결국 언어의 충돌과 경쟁을 수반하는 번역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 이질적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독서와 수용이라는 복잡한 경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문학이 추구해온 문학적 기법과 주제에 대하여 외국의 독자들이 어떻게 이를 받아들일까는 완결된 번역을 전제할 경우만 그 논의가 가능한 일이다.


우리 작가들은 이제부터 자기 작품을 세계 무대에 내놓고 세계의 독자를 상대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번역 문제를 고심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작가 스스로 문학에 대한 인식과 방법을 새롭게 전환하는 일이다.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어떻게 공간적으로 확장된 세계적 보편성으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까를 고심해야 한다. 한국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의 확대,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의 전환, 이것이 바로 한국문학이 세계 무대로 나서기 위한 또 하나의 필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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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그 위상을 높이려면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한 고급 독자층을 더욱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은 외국의 대학에서 대개 동아시아 문학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동아시아 문학의 넓은 범주 안에서 중국 문학이나 일본 문학과 함께 경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문학이 독자적인 성격과 그 보편적인 의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 문학 안에서 한국문학이 차지하게 되는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해외 한국문학 전문가를 제대로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고 그 교육 연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에 관한 다양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한국학 연구 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해외 일본 연구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해왔으며, 그 결과로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수많은 일본 전문가를 양성하였고 일본 문화의 세계 화를 상당 수준 이루어내고 있다. 우리도 한국국제교류재단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지원 대책을 만들고 있으나, 장기적인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외 한국문학 지원 기금’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고정적 지위를 확보하고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어야만 한국문학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문학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논문 또는 책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하는 저술 지원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 해외에서 한국 에 관한 책을 출판하려면 여간 힘들지 않다. 한국문학에 관한 전 문 연구 서적을 출판하기 위한 출판 지원 제도를 마련하면 한국 문학에 관한 새로운 연구 작업이 더 많이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대학에서 한국문학 교육 연구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할 경우, 중국 문학이나 일본 문학 전문가들과의 학문적인 접촉과 교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문학 연구의 성과가 동아시아 지역의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와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만, 지역 문화 연구로서의 상호 관련성이 더욱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한국문학 연구의 학문적 위상도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문학인들도 세계 각국의 문학인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교류함으로써 상호 이해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야만 한다.


우리 문학은 지금까지 외국 대학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분야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주목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행히도 근래에 들어서 한국 경제의 발전과 해외 시장 진출에 따라 한국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한 세계인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세종학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어 보급 운동이 세계적으로 크게 확산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대학의 한국문학 강좌도 한국어 교육의 확대와 함께 점차 늘고 있다. 여기에는 ‘K팝’을 중심으로 하는 ‘한류’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외국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에 대해 더 배우고 연구하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해외에 우리 문학을 폭넓게 소개하고 그 연구를 더욱 확대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제도적 지원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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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마음껏 축하하면서도 이렇게 다시 내게 묻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세계 평화와 공존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진지하게 숙고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세계 문단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문학가가 또 나올 수 있을 까? 우리에게 인류 문화의 발전을 위해 획기적인 발명을 이룬 뛰어난 과학자는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미래 사회를 위해 새로운 삶의 가치와 원리를 창조해낼 수 있는 우수한 학자를 제대로 양성하고 있는가?


이런 부정적 질문 끝에서도 나는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한강의 신실한 작가적 태도를 다시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관한 공식 기자회견조차 사양한 한강의 작가적 태도에서 느껴지는 진중함은 약자의 편에서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파헤쳐온 이 작가의 노력이 얼마나 웅숭깊은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제 우리 문학의 목표는 노벨문학상 이후의 일에 맞춰져야 한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문학은 한국인의 삶과 그 의미와 가치를 세계 문화 속에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우리 문학의 위상을 굳건히 하면서 세계 문화의 발전을 선도하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문학의 세계적 확산이 실제로 가능해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우리 문학의 역할이 더욱 크고 소중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영민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데뷔. 『한국현대문학사』(1, 2),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 『이상 연구』, 『한국현대문학비평사』 등의 연구서와 『소설과 운명의 언어』, 『문학사와 문학비평』, 『분석과 해석』 등의 비평집, 『커피 한 잔』,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 등의 산문집을 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버클리대학교 겸임교수, 중국 산둥대학교 석좌교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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