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 이후 십 년이 지난 뒤에 ‘심우장 尋牛莊 산시 散詩 ’라는 표제로 일련의 시편들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시적 변모를 새롭게 보여주었다.
「심우장 산시」는 1936년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작 형식으로 연재되었다. 총 6회에 걸쳐 「산거 山居 」, 「산골물」,「모순 矛盾 」, 「천일 淺日 」, 「쥐 (鼠) 」, 「일출 日出 」, 「해촌 海村 의 석양」, 「강 배」, 「낙화」, 「일경초 一莖草 」, 「파리」, 「모기」, 「반월 半月 과 소녀」 13편의 시를 수록했다. 이 작품들은 한용운이 서울 성북동 의 심우장 尋牛莊 에 기거하면서 느낀 경험적 일상의 단편들을 시적 형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시집 『님의 침묵』에서 볼 수 있었던 시적 주체의 자기 고백적인 진술법과 ‘님’이라는 시적 대상을 향한 간절한 원망 願望 의 어조에서 벗어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인의 현실 인식과 그 치열한 역사의식은 여전히 그 내면 풍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심우장 산시」는 비슷한 시기에 「심우장 尋牛莊 만필 漫筆 」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산문과 함께 1930년대 중반 만해의 문필 생활과 그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에 해당한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심우장 산시 5」의 작품들을 『유심』 독자들과 함께 다시 읽기로 한다. 작품 원문의 대조 및 주석 작업은 권영민 교수가 맡았음을 밝힌다.
「심우장 산시 5」
강江 배
저녁 빛을 배불리 받고
거슬러 오는 작은 배는
온 강江의 맑은 바람을
한 돛에 가득히 실었다.
구슬픈 노 젓는 소리는
봄 하늘에 사라지는데
강江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
● 원문
江 배
저녁볏을 배불리 밧고
거슬리 오는 적은배는
왼江의 맑은 바람을
한돗에 가득히 실엇다
구슬푼 노젓는 소리는
봄하늘에 사라지는대
江가의 술ㅅ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찟을 한다
─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낙화落花
떨어진 꽃이 힘없이 대지大地의 품에 안길 때
애처로운 남은 향기香氣가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작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
× × ×
떨어진 꽃이 굴러서 알지도 못하는 집의 울타리 사이로 들어
갈 때에,
쇠잔한 붉은빛이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 × ×
떨어진 꽃이 날려서 작은 언덕을 넘어갈 때에,
가엾은 그림자가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봄을 빼앗아가는 악마惡魔의 발밑으로 사라지는 줄을 안다.
● 원문
落花
떠러진 꼿이 힘업시 大地의품에 안길때
애처로운 남은香氣가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적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
× × ×
떠러진 꼬시 굴러서 알지도 못하는집의 울타리새이로 드러갈때에
쇠잔한 붉은빗이 어대로 가는줄을 나는안다
× × ×
떠러진 꼬시 날려서 적은 언덕을 넘어갈때에
가엽슨 그림자가 어대로 가는줄을 나는안다
봄을 빼아서가는 惡魔의 발미트로 사러지는줄을 안다
─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일경초一莖草
나는 소나무 아래서 놀다가
지팡이로 한 줄기 풀을 분질렀다.
풀은 아무 반항反抗도 원망怨望도 없다.
나는 부러진 풀을 슬퍼한다.
부러진 풀은 영원永遠히 이어지지 못한다.
× × ×
내가 지팡이로 분지르지 아니하였으면
풀은 맑은 바람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은銀 같은 이슬에 잠자고 키스도 하리라.
× × ×
모진 바람과 찬 서리에 꺾이는 것이야 어찌하랴마는
나로 말미암아 꺾어진 풀을 슬퍼한다.
× × ×
사람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
인인지사仁人志士 영웅호걸英雄豪傑의 죽음을 더욱 슬퍼한다.
나는 죽으면서도 아무 반항反抗도 원망怨望도 없는 한 줄기 풀
을 슬퍼한다.
● 원문
一莖草
나는 솔나무 아래서 놀다가
지팽이로 한줄기 풀을 부질럿다
풀은 아모 反抗도 怨望도업다
나는 부러진 풀을 슯어한다
부러진 풀은 永遠히 이어지지 못한다
× × ×
내가 지팽이로 부질느지 아니하얏스면
풀은 맑은바람에 춤도추고 노래도하며
銀같은 이슬에 잠자고 키쓰도 하리라
× × ×
모진 바람과 찬 서리에 꺽기는 것이야 엇지하랴마는
나로 말매암아 꺽거진풀을 슯어한다
× × ×
사람은 사람의 죽엄을 슯어한다
仁人志士 英雄豪傑의 죽엄을 더욱 슯어한다
나는 죽으면서도 아모 反抗도 怨望도 업는 한줄기풀을 슯어한다
─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권영민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데뷔. 『한국현대문학사』(1, 2),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 『이상 연구』, 『한국현대문학비평사』 등의 연구서와 『소설과 운명의 언어』, 『문학사와 문학비평』, 『분석과 해석』 등의 비평집, 『커피 한 잔』,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 등의 산문집을 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버클리대학교 겸임교수, 중국 산둥대학교 석좌교수. 본지 발행인.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 이후 십 년이 지난 뒤에 ‘심우장 尋牛莊 산시 散詩 ’라는 표제로 일련의 시편들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시적 변모를 새롭게 보여주었다.
「심우장 산시」는 1936년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작 형식으로 연재되었다. 총 6회에 걸쳐 「산거 山居 」, 「산골물」,「모순 矛盾 」, 「천일 淺日 」, 「쥐 (鼠) 」, 「일출 日出 」, 「해촌 海村 의 석양」, 「강 배」, 「낙화」, 「일경초 一莖草 」, 「파리」, 「모기」, 「반월 半月 과 소녀」 13편의 시를 수록했다. 이 작품들은 한용운이 서울 성북동 의 심우장 尋牛莊 에 기거하면서 느낀 경험적 일상의 단편들을 시적 형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시집 『님의 침묵』에서 볼 수 있었던 시적 주체의 자기 고백적인 진술법과 ‘님’이라는 시적 대상을 향한 간절한 원망 願望 의 어조에서 벗어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인의 현실 인식과 그 치열한 역사의식은 여전히 그 내면 풍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심우장 산시」는 비슷한 시기에 「심우장 尋牛莊 만필 漫筆 」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산문과 함께 1930년대 중반 만해의 문필 생활과 그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에 해당한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심우장 산시 5」의 작품들을 『유심』 독자들과 함께 다시 읽기로 한다. 작품 원문의 대조 및 주석 작업은 권영민 교수가 맡았음을 밝힌다.
「심우장 산시 5」
강江 배
저녁 빛을 배불리 받고
거슬러 오는 작은 배는
온 강江의 맑은 바람을
한 돛에 가득히 실었다.
구슬픈 노 젓는 소리는
봄 하늘에 사라지는데
강江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
● 원문
江 배
저녁볏을 배불리 밧고
거슬리 오는 적은배는
왼江의 맑은 바람을
한돗에 가득히 실엇다
구슬푼 노젓는 소리는
봄하늘에 사라지는대
江가의 술ㅅ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찟을 한다
─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낙화落花
떨어진 꽃이 힘없이 대지大地의 품에 안길 때
애처로운 남은 향기香氣가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작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
× × ×
떨어진 꽃이 굴러서 알지도 못하는 집의 울타리 사이로 들어
갈 때에,
쇠잔한 붉은빛이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 × ×
떨어진 꽃이 날려서 작은 언덕을 넘어갈 때에,
가엾은 그림자가 어디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봄을 빼앗아가는 악마惡魔의 발밑으로 사라지는 줄을 안다.
● 원문
落花
떠러진 꼿이 힘업시 大地의품에 안길때
애처로운 남은香氣가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적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
× × ×
떠러진 꼬시 굴러서 알지도 못하는집의 울타리새이로 드러갈때에
쇠잔한 붉은빗이 어대로 가는줄을 나는안다
× × ×
떠러진 꼬시 날려서 적은 언덕을 넘어갈때에
가엽슨 그림자가 어대로 가는줄을 나는안다
봄을 빼아서가는 惡魔의 발미트로 사러지는줄을 안다
─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일경초一莖草
나는 소나무 아래서 놀다가
지팡이로 한 줄기 풀을 분질렀다.
풀은 아무 반항反抗도 원망怨望도 없다.
나는 부러진 풀을 슬퍼한다.
부러진 풀은 영원永遠히 이어지지 못한다.
× × ×
내가 지팡이로 분지르지 아니하였으면
풀은 맑은 바람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은銀 같은 이슬에 잠자고 키스도 하리라.
× × ×
모진 바람과 찬 서리에 꺾이는 것이야 어찌하랴마는
나로 말미암아 꺾어진 풀을 슬퍼한다.
× × ×
사람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
인인지사仁人志士 영웅호걸英雄豪傑의 죽음을 더욱 슬퍼한다.
나는 죽으면서도 아무 반항反抗도 원망怨望도 없는 한 줄기 풀
을 슬퍼한다.
● 원문
一莖草
나는 솔나무 아래서 놀다가
지팽이로 한줄기 풀을 부질럿다
풀은 아모 反抗도 怨望도업다
나는 부러진 풀을 슯어한다
부러진 풀은 永遠히 이어지지 못한다
× × ×
내가 지팽이로 부질느지 아니하얏스면
풀은 맑은바람에 춤도추고 노래도하며
銀같은 이슬에 잠자고 키쓰도 하리라
× × ×
모진 바람과 찬 서리에 꺽기는 것이야 엇지하랴마는
나로 말매암아 꺽거진풀을 슯어한다
× × ×
사람은 사람의 죽엄을 슯어한다
仁人志士 英雄豪傑의 죽엄을 더욱 슯어한다
나는 죽으면서도 아모 反抗도 怨望도 업는 한줄기풀을 슯어한다
─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권영민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데뷔. 『한국현대문학사』(1, 2),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 『이상 연구』, 『한국현대문학비평사』 등의 연구서와 『소설과 운명의 언어』, 『문학사와 문학비평』, 『분석과 해석』 등의 비평집, 『커피 한 잔』,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 등의 산문집을 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버클리대학교 겸임교수, 중국 산둥대학교 석좌교수. 본지 발행인.